새해 벽두부터 국회가 여야의 몸싸움으로 쑥대밭이 됐지만 전운이 감도는 것은 서초동 법조타운도 마찬가지다. 단지 혈투가 눈에 보이지 않고,총성만 나지 않을 뿐이다. 특히 법원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지된다. 서울변호사협회가 올해부터 서울소재 법관 700여명을 대상으로 심리태도는 물론 사생활까지 점수로 매겨 법원에 인사참고 자료로 제출하겠다고 벼르고 있어서다. 법관평가제라는 포탄은 아직 장전도 안 됐지만 법원쪽에선 벌써부터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법관의 독립성과 재판의 공정성 훼손 운운하지만 당사자에 불과한 변호인이 재판장의 자질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언짢은 것이다.

물론 변호사들의 입장은 정 반대다. "변호사 몇 년이나 했느냐"며 안하무인격인 판사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다짐이 법관평가제의 요체다. 당당하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법정에만 들어서면 작아지는 자신들의 자존심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이 섰을 법도 하다. '영원한 갑' 판사들과 '뿔난' 변호사들 간 일합이 어떤 식으로 결말날지 자못 흥미롭다.

판사들의 코털 건드리기에 검찰도 가세했다. 검찰이 최근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면책조건부 진술제'다. 몇 년 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지난 연말 대통령 업무보고 때 또다시 올렸다. 올해는 기필코 도입하겠다는 각오다. 플리바기닝으로 잘 알려진 이 제도는 말그대로 검찰과 범죄피의자 간에 '거래'를 하는 것이다. 범죄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면 그 대가로 검찰은 형량을 낮춰준다. 검찰이 형량까지 좌지우지하게 돼 법원의 권한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사법정의를 구현해야 할 검찰이 범죄자와 밀실거래나 일삼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차명으로 아파트를 구입해주는 등 범죄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은밀하고도 교묘한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려면 플리바기닝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검찰 측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것이 법원 측 고민이다.

변호사업계와 검찰의 협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법원이 아니다. 법원은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한층 더 정교하게 갈고 있다. 밤샘수사와 압박을 통해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던 검찰의 잘못된 구속수사 관행은 박물관에서나 찾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대부분 판사들의 생각이다. 법원의 불구속수사원칙은 구속 직전에 피의자를 빼내주며 짭짤한 수입을 챙기던 변호사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이처럼 법조3륜이라는 법원과 검찰 변호사업계 간에 물고 물리는 주도권 다툼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또 우리나라만큼 법조3륜이 서로 가까운 나라도 없다.

법정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던 판 · 검사와 변호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아침에 로펌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법관평가제나 플리바기닝제 도입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칼로 물베기라는 부부싸움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법조계. 정의의 여신이 기축년 올해는 누구에게 미소 지을지 궁금하다.

김병일 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