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패션업체들의 올 전망 역시 전반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체감경기가 악화되고,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비심리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패션업계가 주목하는 올해 3가지 트렌드가 있다. 가치소비,로(raw) 트렌드,시니어 시장 등이 올해 패션업계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가치소비'가 뜬다

올 봄ㆍ여름(SS) 시즌을 겨냥해 선보인 밀라노 여성복 컬렉션.이탈리아 명품 '프라다'는 여러 번 입어 해진 것처럼 보풀이 일어난 상태로 마감된 솔기와 다림질이 덜된 주름 스커트 및 재킷 등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처럼 꾸미고 덧붙이기보다 '본질'에 충실한 '가치소비'가 올해 패션 트렌드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불황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백화점 매출을 이끈 것은 인지도가 확고한 명품 브랜드나 모피 아이템,기능성 아웃도어 브랜드였다.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 제품들이 더욱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올해도 소비 횟수가 줄어드는 대신 소비의 질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연으로의 회귀

21세기 소비 트렌드의 핵심인 '웰빙'을 넘어서 최근에는 '로(raw)'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다. 빳빳하게 다려지고 풍성하게 부풀려진 재킷과 스커트 대신 직장에서는 물론 여가시간에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이지룩(easy look)이 좋은 예다. 옷 자체가 아름다운 것보다는 입는 사람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옷의 본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과다한 가공이나 염료보다는 다소 투박하거나 거친 친환경 소재나 자연을 닮은 컬러들이 주목받는다.

특히 올 봄ㆍ여름 해외 컬렉션을 분석해 보면 힘든 일상을 탈피해 편안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에콜로지' 트렌드와 일맥상통한다. 천연섬유,자연스러운 구김 소재,거친 외관을 살린 올록볼록한 소재와 플라워ㆍ나뭇잎ㆍ안개ㆍ이끼 등 자연물의 패턴,선명하고 정확한 것보다는 바랜 듯한 컬러,그라데이션 컬러 등이 그 특징이다.

이와 함께 보헤미안(Hohemianㆍ유랑민)의 자유로운 감성과 노스탤직(Nostalgicㆍ옛시절을 그리워하는) 스타일이 더해져 고급스러운 '빈티지 룩'이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넉넉한 실루엣과 신경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쳐 입은 레이어드 스타일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옷의 여밈을 닫지 않고 풀어해친 박스 형태의 코트,넉넉한 A라인 원피스는 지난해에 이어 인기 아이템 리스트에 올랐다. 팬츠와 스커트가 발목으로 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캐롯라인(Carrot Line)도 핫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옷차림은 한층 자연스럽고 단순해진 반면 액세서리는 화려하고 큰 아이템이 눈길을 끈다. 원석 주얼리,벙거지 모자나 빅사이즈 가방,머플러 등이 필수 아이템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 불경기와 맞물려 줄어든 소비 횟수와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철에 구애받지 않고 입는 '시즌리스(seasonless)' 아이템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올 상반기에는 봄ㆍ여름 시즌임에도 그레이ㆍ블랙 등의 무채색,면ㆍ리넨 혼방 소재와 가죽 소재의 재킷이나 카디건ㆍ모피 베스트 등 계절과 무관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시장을 공략해라

시니어 시장은 국내 패션시장에서 마지막 남은 '블루 오션'으로 꼽히고 있다. '루비족(Refresh Uncommon Beautiful Youthful)' '나우족(New Older Women)' 등으로 불리는 '뉴 시니어층'이 신소비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40대의 신체와 30대의 감성을 지닌 고연령층이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2010년엔 이들이 창출하는 시장 규모만 해도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만한 브랜드가 드물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RKFN의 '엘파파',형지어패럴의 '라젤로',더베이직하우스의 '디아체' 등 시니어 브랜드들이 잇따라 론칭했다. 올해는 이 같은 시니어 시장이 한층 주목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도움말=인터패션플래닝ㆍP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