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씨의 수필 '진한 음식과 말'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서울음식의 특색은 서울김치가 그렇듯 양념이 진하지 않고 맛이 부드럽고 슴슴한 건데 그게 뭐든지 자극적인 것이라야 주목을 끄는 요즘 세태에 맞지 않는 것인지 점점 밀려나 자취도 없이 사라져가는 듯해 적이 섭섭하다. "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자극적인 음식과 자극적인 말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도 생각하게 된다. '퍽''매우' 해도 될 것을 '너무너무'라고 한다거나 세련을 쎄련이라고 하는 등 열거하려면 한이 없는 말의 양념 과잉 현상 말이다. "

이 글이 쓰여진 지 20여년.음식도 그렇지만 말은 양념 과잉을 넘어 양념 범벅이 된 듯하다. 자극적 음식은 물론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가 청소년들의 폭력성을 부추긴다는 연구결과가 있거니와 언어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걸까. 젊은층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자극적이고 노골적이 돼 간다.

'그윽하다''고즈넉하다''다소곳하다'같은 은근한 말은 사라지고,'삽질하다''쩔다''엽기적'처럼 전같으면 입에 담기조차 꺼리던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게 그것이다. 일상어도 마찬가지다. 식사를 대접하다는 '쏘다',문자를 보내다는 '뿌리다',동참시키다는 '엮다'혹은 '낚다'라고 하는 식이다.

말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의 심성에 영향을 미친다. 각박하고 거친 말은 아무도 모르는 새 불신과 갈등 미움을 조장한다. 공격적이고 비아냥거리는 투의 말에 자주 접하면 마음가짐 역시 격화되거나 비굴해지기 십상이다. 실제 퍼퓰리즘은 자극적 언어와 선동적 구호를 무기로 퍼진다.

사람은 또 말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지닌다고 한다. 대박과 명품,로또라는 말이 입에 붙으면서 작고 소박한 것은 우습게 알게 된 건지도 모른다. 실제 출판과 영화계에선 대박이 화근이란 말도 있다. 한번 대박이 나면 계속 대박거리만 좇느라 투자의 정석을 무시하다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잘산다는 건 물질적 정서적 풍요로움을 함께 지니는 걸 의미할 게 틀림없다. 올해엔 '차근차근' '알뜰살뜰' '차곡차곡' '뚜벅뚜벅'같은 곱고 반듯한 단어들이 본래의 뜻을 찾아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대박과 명품을 찾아 헤맨 세월이 신기루를 좇아 달린 시간은 아니었는지 돌아보면서.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