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는 모순되는 진실을 다룬다

<제시문>

[논술 기출문제 풀이] 고려대학교 2009학년도 수시2 논술(인문계) 풀이 (下)
어떤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가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행하는 선택을 타인이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에게 당신의 의지대로 오른손 또는 왼손을 들라고 한다고 하자.

당신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당신이 오른손을 들지 왼손을 들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당신 앞에 두 개의 상자가 있는데 하나는 투명하고 다른 하나는 불투명하다.

투명한 상자 안에는 100만원이 들어 있다.

불투명한 상자 안에는 1억원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는데 당신은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당신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가능한 한 많은 금전적 이득을 얻고자 한다.

(1) 불투명한 상자 하나만을 취한다.

(2) 두 개의 상자를 모두 취한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있다.

'상당히 뛰어난 예측력을 지닌 어떤 존재'가 당신이 할 선택을 미리 예측하고 그 예측의 내용에 따라 불투명한 상자에 1억원을 넣어둘지 말지를 결정한다.

만약 그 존재가 당신이 (1)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그는 불투명한 상자에 1억원을 넣는다.

만약 그 존재가 당신이 (2)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그는 불투명한 상자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Ⅲ. 제시문 (라)의 상황을 두고,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1)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2)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의지의 문제와 관련하여 두 주장을 각각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를 추론하시오. (서술을 위주로 답안을 전개하되 수식이나 표를 사용할 수 있음) (20점)

<해 제>

제시문 (라)는 뉴콤의 문제(Newcomb's problem)라는 유명한 패러독스다.

고려대학교는 올해 모의고사 시행 이후 과연 수리 논술이 될 것이냐 아니면 수리적 이해를 묻는 논술이 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분분했던 3번 문항에서 예정(豫定)과 자유의지(自由意志)라는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했다.

이번 문제의 전체 주제가 '자유'인 만큼 제시문 (라)를 관통하는 맥도 역시 자유에 관한 중요한 논의와 맞닿아 있다.

한 세트로 제시되는 논술 제시문들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하에 꿰어져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만,학교 측에서는 친절하게도 수험생이 혹시 뉴콤의 문제가 내포하는 의미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할까 걱정되어 뉴콤의 패러독스를 설명하기에 앞서 제시문 (라)의 앞 부분에 자유의지를 선택의 예측가능성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간략한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답안이 잘못된 방향으로 작성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배려를 하였다.

이제 우리는 의사 결정자의 선택이 금전적 이득의 최대화라는 목표 하에서 이루어 질 때,자유의지론과 미래결정론의 양 입장이 모두 나름의 합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음을 설명하여야 한다.

예측자의 예측능력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의사 결정자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또한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한 의사 결정자의 암묵적인 또는 명시적인 입장과 연관이 있는지를 구성해 내는 능력이 문제해결의 열쇠다.

논제는 '자유의지의 문제와 관련하여 두 주장을 각각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를 추론'하라고 하는데,이는 주어진 제시문이 '패러독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패러독스(paradox)는 모순되는 진실(contradictory truth)을 다루기 때문이다.

패러독스의 가장 기초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이 문장은 틀렸다(This sentence is wrong)"이다.

이 문장은 틀린 문장일까?

만약 이 문장이 틀렸다면,이 문장이 전달하는 정보는 거짓이다.

그런데 이 문장이 전달하는 정보는 바로 문장의 진위 여부에 관한 것이다.

만약 이 문장이 틀린 문장이라면,이 문장이 틀렸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므로 이 문장은 참이다.

두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어 서로의 머리와 꼬리를 맞물고 있듯이 패러독스에서는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거짓말쟁이 크레타 인의 패러독스도 마찬가지다.

어떤 크레타 인이 외국에 나와서 말하기를,'모든 크레타 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모든 크레타 인은 거짓말쟁이일까?

만약 모든 크레타 인이 거짓말쟁이라고 한다면 이 말을 한 사람 또한 거짓말쟁이이므로 허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크레타 인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틀렸다.

이처럼 생각하면 할수록 논리적 딜레마에 빠져들게 되는 모순이 바로 패러독스다.

하지만 이러한 패러독스의 역설은 사고 능력을 강화시킨다.

공간의 무한분할을 말했던 제노의 패러독스는 극한이라는 개념을 깨우치게 한다.

날아가는 화살은 과녁에 닿을 수 없다.

왜냐고?

화살을 활시위에 메긴다.

그리고 화살이 과녁을 향해 출발하는 순간 당신은 그 출발점과 과녁 사이의 거리를 잰 다음 반으로 나눈다.

화살은 그 거리의 반을 날아간다.

그리고 이제 절반이 남은 거리를 또 다시 양분한다.

화살은 다시 그 반의 반에 해당하는 거리를 날아간다.

이제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가 남았다. 이 거리 또한 반으로 나눌 수 있다.

화살은 다시 반만큼의 거리를 날아가고 절반이 더 남았다. 그럼 이 남은 거리를 다시 반으로 나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다 보면 아무리 작다 한들 남은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고,화살은 무한히 양분되는 여분의 거리를 날아가느라 결국 과녁에 도달하지 못한다.

극한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화살은 과녁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패러독스는 상충하는 논리의 균열 속에 새로운 사유의 세계가 열리게 함으로써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

뉴콤의 패러독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론 물리학자 윌리엄 뉴콤(William Newcomb)이 창안한 예언 패러독스는 미래 예측에 있어서 합리성의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도구적 이성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자유의지와 숙명론이라는 인류의 고전적 딜레마를 수리적으로 다룬다.

최선의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동을 선택하라.

이것이 합리성의 근본 원리다.

하지만 미래의 예측과 자유 의지의 딜레마는 합리성으로 접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유의지론과 미래결정론의 두 입장 모두 체계적인 논리 구조 내에서 각각 합리적인 설명 도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합리성을 문제 해결에 끌어들여 보았자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합리성의 기준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으로 인해 고민만 깊어진다.

그 동안 많은 수학자,철학자,자연과학자,정치학자 등이 이러한 뉴콤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왔지만 그 수만큼이나 해법도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해법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는 학자들이나 일반인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어 있으며,이러한 문제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제3의 견해까지 등장하면서 이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패러독스에 대중적인 유명세를 부여한 사람은 마틴 가드너였다. 마틴 가드너가 1973년 Scientific American 지에 뉴콤의 문제를 소개하는 글을 게재하자 독자들이 148통에 달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를 보낸 독자 중 89명은 상자 하나만을 선택하는 대안을,37명은 상자 두 개 모두를 선택하는 방법을 지지했으며,나머지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존립 불가능하거나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입장을 택하였다.)

일단 깔끔한 논의의 전개를 위해서 제시문 (라)에서 불투명한 상자 하나(B1)을 취하는 선택을 A1이라고 하고,불투명한 상자(B1)과 투명한 상자(B2)를 모두 취하는 선택을 A2라고 하자.

각각의 경우 당신의 기대 효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A1과 A2 두 가지 중에 어떤 대안을 선택하더라도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논리 중 하나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지만,이들 두 가지 모두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근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초인적 존재가 당신의 결정을 사전에 예측하고 미리 불투명한 상자에 1억원을 넣었거나 빈 상자로 놓아두는 상황은 일견 게임구조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게임 상황 하에서 게임 이론의 '우위의 법칙(dominance principle)'을 따르는 합리적인 결정자라면 초인적인 존재가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상관없이 A2, 즉 상자 두 개를 모두 선택하는 대안을 택한다.

미래가 결정되지 않았다면 예측자의 예정 여부에 관계없이 A2가 A1의 대안보다 항상 100만원을 더 얻도록 해주기 때문에 예측자의 판단과 상관없이 더 많은 보상을 얻게 됨으로써 보다 합리적인 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뉴콤의 문제는 죄수들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게임구조와 동일한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나 다른 논리에서 A1의 대안을 선호할 수 있다.

설문에 의하면 초인적인 예측 능력을 가진 그 예측자는 '상당히 뛰어난 예측력을 지닌 어떤 존재'다.

만약 당신이 A2의 대안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이 초인적인 존재는 불투명한 상자에 (거의 확실하게) 아무 것도 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A1의 대안을 선택한다면 초인적인 존재는 (비록 약간의 예측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불투명한 상자에 1억원을 넣어놓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당신은 A1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이는 사실 '상당히 뛰어난 예측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 선택의 타당성이 평가된다.

예측이 옳을 확률을 p=0.9라고 상정하는 경우(0≤p≤1),각 대안의 기대효용을 계산해보면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초인적인 존재의 예측 적중률이 0.9라고 가정하자.

첫번째 대안, 즉 투명한 상자 하나만을 선택할 경우의 기대효용은, A1 : (0.9×100,000,000)+(0.1×0) = 90,000,000 원이 된다.

두 번째 대안에 따라서 투명한 상자와 불투명한 상자 두 개를 모두 선택할 경우의 기대효용은,A2 : (0.1×101,000,000)+(0.9×1,000,000) = 11,000,000원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불투명한 상자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상당히 뛰어난 예측력'이 90%만큼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슈퍼 컴퓨터가 예측한 일기예보도 빗나가기 일쑤이고,인정받는 명의의 오진율도 50% 정도라고 한다.

선거철이면 용하다는 역술인 집의 문지방은 미래를 궁금해하는 정치인과 기자들의 발길에 닳느라 남아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분들의 예언도 선거가 끝나면 틀린 경우가 많다.

지금도 연말이라 새해 운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로 사주 카페와 점집이 인기이지만 기축년 한 해가 지나고 나면 과연 그 인생예보가 딱 들어맞는 경우란 드물 것이다.

자, 그렇다면 '상당히 뛰어난 예측력을 지닌 어떤 존재'의 예측이 옳을 확률을 p=0.4라고 상정해보자.

이 경우 A1의 기대효용은,(0.4×100,000,000)+(0.6×0) = 40,000,000원이 되고,반면에 A2의 기대효용은,(0.6×101,000,000)+(0.4×1,000,000) = 62,000,000 이 된다.

그러므로 이 경우 오히려 두 개의 상자를 모두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확률론적인 합리성을 추구할 경우 예측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A1이 합리적일 수도 있고 A2가 합리적일 수도 있다. (보다 정교한 수치를 구해보자. A1≥A2 이려면,p×100,000,000 ≥ p×101,000l000 + (1-p)×1,000,000 이다. 즉,p≥101/200이어야 A1의 선택이 A2의 선택보다 확률론적으로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합리성의 기준에 있어서 갈등이 생겨나는 첫 번째 대안과 두 번째 대안 사이에서 당신이 어떤 선택을 내릴 때에는 미래가 어느 정도로 예정되었는지 본인의 자유의지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상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뉴콤의 문제에서 죄수들의 딜레마와 마찬가지로 두 박스를 모두 선택하는 대안은 게임의 구조에서 결정되는 연역적 추론에 의한 결과인 반면,상자 하나만을 선택하는 대안은 각 보상(payoff) 구조의 기대치와 확률을 귀납적으로 계산해 나오게 되는 결과다.

기대효용 극대화를 위한 합리적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은 어떠한 세계관을 선택할지에 따라서 답이 달라진다.

확률론적 세계관을 택할 것이냐,예정적 세계관을 택할 것이냐를 정해야 한다.

뉴콤의 문제를 통해서 이러한 세계관의 갈등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미래가 예정되지 않았고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미래가 흘러간다는 생각을 한다면 투명한 상자와 불투명한 상자를 모두 선택해야 하고,미래가 예정되었고 그에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면 불투명한 상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결정론적 세계관과 확률론적 세계관 사이에서 어떤 것이 더 타당한지,아니면 이들 양자가 어느 정도로 상호 연관되어 있는지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런데 현재의 추세는 확률론적이고 귀납적인 세계관이 더욱 힘을 얻어가는 추세다.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명당 도둑도 등장하고,집안 이름의 돌림자도 오행을 따라서 짓지만 미래는 연역적으로 예측 가능하기보다는 귀납적인 확률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는 태도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상대성 이론을 제시해 절대 시공간의 관념을 허물었던 아인슈타인조차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에 고개를 저었지만, 신을 믿었던 아인슈타인의 믿음은 틀린 것으로 입증되었다.

양자역학에서 확률은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세계를 훌륭히 설명하고,카오스 이론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몇 해 전에는 '나비효과'를 제목으로 차용한 영화도 만들어진 바 있다.

양자역학 및 복잡계 이론 분야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확률론적 세계관은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확률론적 혁명(probabilistic revolution)'을 일으키고 있다.

브라이언 아서(W. Brian Arthur)는 복잡계 경제이론을 주창하였는데,그는 인간 합리성의 한계와 판단기준의 주관성으로 인하여 기존 경제학에서 당연하다고 받아 들여져 온 완전한 합리성의 전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각 개인의 결정은 사회적인 상호연관관계 속에서 항상 다른 사람의 결정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전통적 합리성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사회 속의 개인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그리고 상대방의 결정이 자신에게 되미치는 반작용을 함께 고려하면서 상향식으로 거시적 사회균형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복잡계 경제이론의 기본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학 연구의 주종을 이루어왔던 공리적,연역적 방법 대신에 현실에서의 관찰과 그에 기반하는 귀납적 방법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뉴콤의 문제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자유 의지(free will)'는 여전히 답하기 곤란한 심오한 문제다.

수험생들은 운명결정론과 자유의지론 양자를 아우르는 답안을 체계적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