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직사회의 무사안일·보신주의 풍토 개선될것"

반 "현 정부 코드에 맞게 감사방향 바꾸려는 의도"

공무원이 규정·절차를 위반하거나 예산 낭비·민원 야기 등 부작용을 일으켜도 고의나 사적 이익 도모 등의 비리가 없고 업무의 타당성 등이 있다면 벌을 주지 않겠다는 이른바 '적극행정 면책제' 실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공무원의 소신 행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감사원의 적극행정 면책제도 도입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면책 규정이 금융감독원의 은행 대출 감독에 적용될 경우 신용 경색을 푸는 데 도움을 줄 것임은 물론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 관행으로 인한 책임 회피로 위기가 증폭되는 악순환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감사원마저 이명박 대통령의 '친기업' 정책을 뒷받침하고 나설 경우 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공직자들의 무소신주의를 더 부채질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 행태가 심각하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작금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공무원들이 공기업·금융기관 구조조정,경제 살리기에 소매를 걷어붙이지 않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게다가 일을 잘 해보려다 문책을 당하면 '잘 해야 본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자조 속에 몸을 사리는 게 인지상정이고 보면 이번 제도는 바람직한 개선 방안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감사 패러다임의 변화가 과연 공무원사회를 일하는 분위기로 바꿀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적극행정 면책제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반대 측, "현 정부 코드에 맞춰 감사 방향을 바꾸려는 것에 불과"

적극행정 면책제 도입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감사원은 지난 정권의 정책과 사람을 난도질한 데 대해선 한마디 반성도 없이 새 정부 입맛에 맞는 '맞춤 감사'를 벌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감사원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감사원 본연의 기능인 회계감사와 공무원 직무감찰에 충실하려는 게 아니라 현 정부의 코드에 맞춰 감사 방향을 바꾸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또 감사원이 기업 및 대민 지원 업무를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가중 처벌하겠다는 것은 일선 행정을 또 다른 형태로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일선 공무원들이 결정을 미루면서 몸을 사리는 게 감사원 책임만은 아니며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을 움직일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지 않고,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근본 이유라고 주장한다.

공무원의 잘못된 행태는 감사원이 감사 기조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게 아니며 감사원은 추상 같은 엄정함과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 찬성 측, "무사안일 보신주의 등 공직 풍토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

이에 대해 찬성하는 쪽에서는 "일을 회피하고 미루는 소극적 보신 행태가 팽배한 데는 업무 추진 동기와 배경에 관계 없이 일률적으로 결과만 따지는 감사원 감사 방식에도 원인이 있다"며 이번 조치가 공직사회의 풍토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경제 비상시국을 맞고서도 사후 문책이 두려워 우물쭈물하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으로 인해 과감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정책 시행이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공무원들의 뿌리 깊은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는 으름장만으로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며 공무원들의 늑장 처리 행태를 가중 처벌키로 한 것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감사원이 적극 행정을 기치로 내건 만큼 흙탕물이 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궂은 일을 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며,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사법적 책임을 면해주는 방안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공무원 권한 남용, 비리 등 부작용 막을 수 있는 대책 강구해야

공직사회의 일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공무원의 책임을 면해주겠다는 감사원 방침은 종전에도 있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사원 예규로 피감 당사자가 면책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다니 경제난 타개를 위한 정책 수립·집행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적극 행정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태만,소극적인 행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제도 도입이 부작용을 몰고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공무원들의 권한 남용과 무책임,비리의 빌미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업무 재량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 지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감사원은 면책 요건으로 현실적 타당성과 시급성,비리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겠다고 하지만 이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따라서 감사 당국은 면책제가 엉뚱한 부작용을 낳는 또하나의 탁상행정이 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고 치밀한 대책을 강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공직사회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스스로 수준과 품격을 높여가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적극행정 면책제 = 공직자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업무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감사원이 12월10일 '경제난 극복지원 및 공직활력 제고를 위한 감사운영 대책'으로 내놓은 것으로, 업무 처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절차 위반, 예산 낭비 등에 대해 공무원의 징계 책임을 감면해주는 제도.

감사를 받는 기관도 감사원에 면책을 청구할 수 있으며, 특히 경제난 타개와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는 면책제도를 적극 운영하는 대신 대민업무 늑장 처리 등에 대해선 가중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변양호 신드롬 =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담당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의혹으로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재판정에 선 후 공직사회에서 구조조정의 총대 메기를 꺼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변 전 국장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했지만 외환은행 매각이라는 정책적 판단에 대한 재판은 공직사회에 '소신있는 일처리 기피'라는 후유증을 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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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12월 11일자 A2면

감사원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공직자가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절차 위반과 예산 낭비에 대해 감사원법상 징계 책임을 감면하는 '적극행정 면책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 공직사회의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무사안일 행태를 척결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부터 대대적인 특별감사에 착수하기로 하고 대민업무 늑장 처리에 대해선 가중 처벌키로 했다.

감사원은 10일 삼청동 감사원 별관에서 이 같은 내용의 '경제난 극복 지원 및 공직활력 제고를 위한 감사운영 대책'을 발표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대책을 현재 진행 중인 모든 감사부터 전면적으로 적용하고 감사원 예규로 '적극 행정 면책제도 운영규정'을 제정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실지감사 단계서부터 적극 행정으로 판단될 경우에는 잘못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불문 처리하고 사안이 애매할 경우 감사원 내부 검토를 거쳐 면책 제도를 적용할 방침이다.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