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언론에) 얘기도 못하겠고 그저 답답할 뿐이다. "

연간 8000억여원에 달하는 정보통신진흥기금(정통기금) 관리를 맡고 있는 지식경제부 A과장은 24일 기자에게 이같이 하소연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통기금 일부와 방송발전기금을 합쳐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만들겠다며 관련법 제정을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방통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 신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통신 발전에 관한 기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방통위는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지난 21일)가 끝나자마자 제정안을 단독 안건으로 처리하기 위해 서둘러 전체회의 일정을 잡아 처리한 것.

두 달 넘게 두 기관의 협의가 안 되자 청와대가 중재에 나섰다. 이번주 중엔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이윤호 지경부 장관이 만나 담판을 벌이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가 갑자기 관련법 제정안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법제처 심의,규제개혁위원회 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 등의 과정에서 쟁점 사안이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연말까지 제정안을 국회에 넘겨야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수 있어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지경부는 답답해하는 표정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부처 협의가 안 된 법 제정안을 방통위가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정부부처 개편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정보통신부로부터 넘겨받은 기금 운영권을 절대 되돌려 줄 수 없다고 버텨 왔다. 기금을 방통위에 넘겨 주면 통신산업 진흥 업무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도 깔려 있다. 방통위는 인터넷TV(IPTV) 와이브로 인터넷전화 등의 연구개발(R&D) 지원을 위해 기금 설치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 왔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가 내는 돈으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산업을 지원하고 있는 현행 정통기금 운영 방식은 문제다"면서도 "무선인터넷 표준 프로그램인 '위피(WIPI)' 존폐 등에 대한 정책 결정은 몇 달째 미루면서 기금 문제는 유독 속전속결로 처리하려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영태 산업부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