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美정권교체기…한·미관계 결정해

군사·경제적 요구에 대응 시나리오를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비롯해 온갖 진기록을 세운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미국이 처한 국내외 상황을 보면 오바마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든지 최악의 지도자로 기록되든지 둘 중 하나밖에 없을 것 같다. 위대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모든 적대적 상황을 타파하고 자신의 정책적 선택지를 넓혀나가는 것이라고 마키아벨리는 지적한 바 있다. 그렇지만 대공황을 능가하는 경제위기,이라크전의 장기화,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악화 등과 같이 오바마가 직면한 상황을 보면 그의 선택 폭은 지극히 좁을 것이다.

오바마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는 어떻게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미국 중심의 군사 및 경제 질서를 유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는 현재의 국제정치현실을 군사,경제,문화가 세개의 층을 이루고 있는 생일 케이크에 비유하고 있다. 이보다는 미국이 부동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군사력과 관련된 제일 위층을 자력이 매우 센 자석에 비유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찰떡처럼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떨어져 나오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그런 형국이다. 그 이유는 미국만큼 군사력에 쏟아부을 돈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경제력 없이는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경제상황의 악화로 오바마는 군사비를 대폭 삭감하라는 국내적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오바마는 이런 요구를 수용해 다자주의라는 이름 하에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들에게 더 큰 군사적,경제적 기여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신행정부가 한국에 더 큰 국제적 기여를 다양한 형태로 요구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국내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명박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들은 군사적,경제적으로 한국을 도왔다. 그 도움으로 오늘날 한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3위권의 국가,가장 잘 훈련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목숨을 바쳤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외국에 나가서 손톱 하나 다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우리 국민들도 이제 버려야 한다.

의식의 전환과 함께 이명박정부는 '한·미 글로벌 동맹'의 구체적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미국 정권이 바뀌었다고 새로운 인맥을 만들고 줄대기를 하겠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발상이다. 미국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한·미공조체제를 손상시키기 않도록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국익의 관점에서 적절한 변화를 가미해 나가는 지혜가 절실히 요청되는 때다. 북핵 문제,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의 역할 등 한·미간 현안들도 이런 각도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역사적으로 한·미관계는 양국이 정권 교체기를 어떻게 잘 관리해 갔느냐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이명박정부는 과거처럼 정권 교체기에 한·미간 엇박자가 나서 지금까지 힘들게 이룩한 한·미동맹 복원의 성과를 훼손하고 양국간 신뢰가 손상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세계경제질서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점에 미국 새정부 출범을 맞아 한·미동맹을 재복원하고 북핵 완전 폐기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능동적 대미외교를 전개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