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조직이 갑자기 삐걱된다면 그곳엔 '또라이'가 있다


영국의 저술가이자 군인으로 아랍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는 191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12명의 아랍인을 데려왔다. 그는 1962년에 제작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제 모델이기도 했다. 생전 처음 외국여행을 하게 된 아랍인들은 투숙한 호텔 목욕탕의 수도꼭지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단 한번 작동으로 물이 쏟아졌으니 그럴 법했다. 그들은 마음껏 목욕을 즐겼다.

로렌스를 정말 당혹케 한 사건은 그들이 귀국하는 날 터졌다. 호텔 로비에 도착한 로렌스는 약속한 시간에 아랍인들이 나오지 않자 호텔 직원과 함께 객실로 올라갔다. 아랍인들은 놀랍게도 수도꼭지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황당해하는 로렌스에게 아랍인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이걸 가져가면 사막 한 가운데서도 마음껏 목욕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아랍인들은 수도꼭지가 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수도꼭지 뒤에 물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도꼭지→파이프→수도관→저수지로 연결된 네트워크 말이다.


▶▶ 네트워크엔 중앙과 주변이 따로 없다

세상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네트워크는 관계와 관계의 연결이다. 네트워크에는 중앙과 주변이 따로 없다. 어떤 네트워크든 관계의 확장 여부에 따라 중앙이 될 수도 있고 주변이 될 수도 있다. 중앙이 따로 없다보니 통상 연결형 조직에 따르게 마련인 지시나 통제도 없다. 정보가 흐르는 길도 일정한 방향이 없다.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최진실 사건'에서도 네트워크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다. 루머 생산자→유포자→증권사 메신저→인터넷→일반인으로 연결된 것이다.

몇 년 전 모 방송사 프로그램은 연예계 최고의 마당발을 조사해본 적이 있다. 한때 개그우먼으로 활동했던 박경림이 첫 손가락에 꼽혔다. '박경림이 아는 사람','박경림을 아는 사람' 모두를 조사해봤더니 그녀의 거미줄이 가장 촘촘하고 넓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인의 눈으로 보면 박경림은 사업을 해야 할 사람이다. 비즈니스 성공의 요체는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 박경림은 연예계 네트워크의 허브요 중심이다. 하지만 이 '중심'은 또 다른 마당발이 나타나면 주변으로 밀린다.

▶▶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왜 중요한가. 관계를 맺으면 시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러기는 'V'자 대형으로 날 때 가장 멀리,빨리 간다. V자형으로 이동하면 혼자 나는 것보다 같은 시간에 70%의 거리를 더 이동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가장 앞에 선 기러기로부터 양력(위로 뜨는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 거리를 날아가야 하는 철새들에겐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새가 다른 새의 날개 끝에서 날아간다면 뒤에서 나는 새는 앞에서 발생한 양력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비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만드는 네트워크는 자연이 설계해 놓은 시너지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기러기는 본능으로 시너지를 내지만 조직은 협력과 전략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메칼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의 가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인터넷이다. 사용자 수가 늘어날수록 이용가치는 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001년 옥션 주식의 50%가 1500억원의 가격에 이베이에 양도됐다. 하지만 옥션 설립과 유지에 들어간 비용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2000년 아메리칸온라인(AOL)이 M&A 사상 최대 금액인 1120억달러에 타임워너를 인수한 것은 사실상 네트워크 기업이 콘텐츠 기업을 포획한 사례였다.

▶▶ M&A는 외부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수단이다

통상 기업들이 M&A(인수ㆍ합병)를 추진하는 이유는 피인수대상 기업의 지식과 네트워크를 흡수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엔 해당 기업이 갖고 있는 자산이나 설비가 중요한 기준이었지만 요즘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이 일차적인 기준이다.

두산은 미국의 건설기계회사인 밥캣을 인수할 때 "밥캣이 미국시장에 갖고 있는 네트워크와 판매 역량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M&A에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최근 세계적인 반도체 특허기업인 샌디스크를 인수하려는 것도 첨단 기술과 양산만으로는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확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결국 M&A는 외부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셈이다. M&A보다 약한 수단으로는 전략적 제휴와 기술-자본-판매 제휴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약서를 동반하지 않은 네트워크의 확장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략과 팀워크,아이디어와 실행능력에서 나온다. '빠꿈이'(경계확장자)들이 갖고 들어오는 정보나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새로운 사람과 조직들을 만나야 한다.

네트워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외부 못지않게 내부 네트워크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보수집→아이디어 창출→의사결정→부서 간 협력→실행이라는 프로세스에서 조직 내 수많은 네트워크들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프로세스를 <협력의 비밀>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다.


▶▶나쁜 성격으로 일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이유로 협력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줄들이 느슨하거나 끊어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조직이 네트워크 자체에 결함이 없는데도 협력이 잘 안 된다면 대개 그 이유는 '사람'에게 있다. 고집이 세서 다른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아니면 지독하게 게으르거나 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고집쟁이'나 '게으름뱅이'보다 훨씬 더 조직에 해악을 끼치는 이들은 세칭 '또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 단어는 쓰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좋은 의미의 '또라이'는 영감과 감성이 너무 풍부해 다른 이들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이 부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쁜 뜻으로 사용되는 '또라이'의 공통점은 자기 중심성-배타성-몰염치로 요약된다. 정당한 이유없이 동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존재다. 조직 행동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스탠퍼드 대학의 로버트 서튼 교수는 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런 류의 또라이들을 조직에서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재팀은 그동안 상식에 입각해 여러 기업 관계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다. "성격은 (남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나쁘지만 맡은 일은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절충형 질문에 비해 대답은 단도직입적이었다. 마창민 LG전자 마케팅 팀장은 "나쁜 성격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을 잘 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협의를 하고 때로는 설득을 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재계 인사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취재팀에 면박을 줬다. 그는 "또라이 옆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옆에 가면 뭔가 상처를 입을 것 같은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결론은 역시 일을 잘 할 수 없고,조직 내에서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것.

지금 당신의 조직에는 어떤 또라이들이 있는가. 혹시 그들이 약간의 재능을 믿고 활개치고 다니지는 않는지….

<특별 취재팀>

조일훈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기자
이해성 사회부 기자
박신영 문화부 기자

<도움말 주신 분>

이홍교수광운대 경영대학장
키스 소여 교수 워싱턴대 심리학과 <그룹 지니어스>저자
신원동 원장 한국인재전략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