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꿈이는 경영학 용어로 '경계확장자'
지식과 생각을 결합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정보화 사회에서 좋은 조직 만드는 일등공신


"수풀에서 갑자기 뱀이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제너럴모터스(GM)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틀림없이 GM은 위원회를 설치할 것이고,외부 뱀 전문가를 초빙해 컨설팅을 받을 게다. 기간은 1년 정도가 될 테고."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EDS(Electronic Data System)의 창업자이자 1992년과 1996년에 연거푸 미국 대선에 도전했던 로스 페로의 독설이다.

페로는 1984년 GM으로부터 25억달러를 받고 EDS를 넘기면서 GM의 이사가 되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IT솔루션을 개발했던 페로 같은 사람의 눈에 비친 GM은 망하는 조직이었다. 페로는 GM의 조직문화가 매사에 규정을 따지는 경직 일변도에다 개인주의까지 판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각 팀에는 리더가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리더가 아니라 그저 '나쁜 관리자'가 있을 뿐"이라고 조롱했다. 결국 페로는 18개월 만에 이사직을 벗어던졌고 GM은 올해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 일하는 경계를 확장하라

어떻게 하면 일 잘하는 조직을 건설할 수 있을까. 정부와 기업,인간이 모여 있는 모든 조직의 고민이 바로 이것이다. 국가원수나 최고경영자(CEO)가 새로 취임하면 바로 조직을 개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하는 환경에 대처하지 못한 조직,난관을 극복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조직,새로운 프로그램과 신상품을 도입하지 못하는 편제는 머지않아 사라지고 만다. 편제(編制)는 조직의 우위를 확보하는 기술이다. 편제 자체는 하드웨어지만 그것을 움직여 나가는 힘은 지극히 소프트웨어적이다. 그래서 영원한 조직이란 있을 수 없다.

좋은 팀은 역할 배분이 잘 돼있다.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리더)이 있고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웃기는 사람(harmonizer)이 있고 어디 가서 정보를 물어오는데 귀신(일명 빠꿈이)인 사람도 있다. 빠꿈이는 경영학 용어로 경계확장자(boundary spanner)다. 이질적인 지식과 생각을 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이들이다. 데이터(data)가 정보(information)로 진화하는 과정에는 빠꿈이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그런 후에야 정보가 지식(knowledge)이 되고, 여기서 관찰이 깊어지면 더 좋은 지식으로 발전한다. 좋은 조직은 한 사람이 두세 가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고 내부에서 역할 형성이 저절로 이뤄진다.


▶▶ 일하는 DNA를 구축하라

기업조직이 10명 안팎의 소규모 팀제로 바뀌어 가는 이유는 정보처리 속도 때문이다. 100명이 모여 있으면 마이크가 있어도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 하지만 다섯명이 있으면 귓속말로 해도 된다.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기간이 짧아지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의 취향이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정보처리 속도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관건이다. 이른 시일 내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좋은 조직에서 관료적 형식주의는 철저하게 금기시된다. 전통적으로 관료 조직에서는 한 사람씩 직무를 명확하게 정해준다.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한 측면도 있고 관련 법령이 그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소단위 팀제를 활용하면 노동의 질적 유연성이 훨씬 높아진다. 한 번에 두세 가지 업무를 처리하는 멀티플레이어를 양산하기도 쉽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강한 조직이 대량 생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각기 다른 자아와 개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는 늘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일 잘하는 DNA'를 편제 속에 공유하고 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 탐구하고 학습하는 분위기,자기계발을 장려하는 시스템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 취재팀>

조일훈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기자 이해성 사회부 기자 박신영 문화부 기자


<도움말 주신 분>


이홍교수 광운대 경영대학장

키스 소여 교수워싱턴대 심리학과 <그룹 지니어스>저자


신원동 원장 한국인재전략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