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통투타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무역풍이 고양이의 꼬리처럼 슬그머니 다가왔다. 남태평양에 자리한 뉴칼레도니아에 들어섰음을 피부가 먼저 감지한다. 뉴칼레도니아는 호주 동쪽,뉴질랜드 북쪽에 위치한 섬나라다. 조개껍데기 속에 안락하게 들어찬 진주처럼 바다의 거친 파도로부터 보호받도록 거대한 산호초로 살포시 둘러싸인 이곳은 두 줄기의 산맥이 사이좋게 뻗어 있으며,중앙부는 고생대풍 산이 많고 주위에 해안대지가 펼쳐져 있어 그 빼어난 경치의 감탄스러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태평양의 안과 밖

1853년 프랑스령이 된 이곳은 1774년 영국 출신 탐험가 제임스 쿡이 서양인으로는 처음 발견했다. 오대양을 탐험하며 대항해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쿡은 하와이 원주민이 던진 돌창에 맞아 사망했지만 영국인들은 남태평양의 지도를 꼼꼼히 완성한 그의 공로를 기려 이름 앞에 '캡틴'을 붙여 칭했다. 영국인들이 이 존칭을 붙여 부르는 이는 수중호흡기를 발견한 자크 이브 쿠스토와 제임스 쿡 두 사람뿐이란다. 그런 캡틴 쿡은 이곳 뉴칼레도니아를 발견했을 당시 숲이 울창한 그의 고향 스코틀랜드와 닮았다 해서 스코틀랜드의 로마시대 이름인 칼레도니아로 명했으니 그렇게 태어난 이름이 '뉴칼레도니아'다.

수도 누메아의 가장 높은 곳인 우엥토로 언덕에 올라서니 모젤만을 품은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화에서나 봤던 멋들어진 요트들이 그 모습도 정갈하게 정박돼 있다. 직접 요트에 올라보는 호사를 누렸지만 촌스러운 평형감각은 지독한 멀미를 동반한다. 가이드 넬리가 밑으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그물망에 오르라 재촉한다. 새하얀 포말을 품고 자수정처럼 빛나는 물빛이 멀찍이서 보기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눈을 감고 털썩 몸을 맡겨본다. 멀미는 간데없고 지상 최대의 대형 해먹에 누운 기분이 자유로움 그 자체다. 그때 커다란 무지개가 눈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소원이라도 빌어야 하나 싶어 눈감아 보지만 홍시처럼 익어가는 일몰이 시작돼 저절로 동공이 확장된다.

일몰의 향연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 유럽풍의 시가지에 위치한 '라 르프' 레스토랑에서 지는 해의 끝자락을 방갈로 운치에 더해 음미해본다. 많이 걷고 보는 것도 좋지만 한끼쯤 프랑스적 만찬을 즐기며 느긋하게 와인과 갈매기의 동화 같은 날갯짓을 번갈아 맛보는 것도 근사하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 아메데

일본의 소설가 모리무라 가쓰라는 1960년대 쓴 그의 작품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의 배경으로 이곳 뉴칼레도니아를 등장시켰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눈길을 사로잡은 이 섬은 여행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좋아하는 일본인들을 지금도 연간 3만명 이상 찾아오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그 일본 작가,참으로 간도 크다. 아무리 이곳이 좋았다고 과감히 천국에 가깝다고 표현하다니…극찬을 쉽게 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 의심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하는 길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아메데섬으로 가는 항해길에서였다.

파란색 사인펜을 뚜껑을 연 채 종이에 놓아두면 시간차에 따라 이미 그 색은 하나가 아닌 다양한 파랑의 농도를 층층이 보여준다. 그런 느낌의 남태평양 바다 위로 가는 배에 앉아 있으니 천지간에 떠 있어 구름 위로 걷고 있는 환상이 밀려온다. 그 감흥을 차곡차곡 마음에 개켜둔다. 아메데섬에는 맘씨 좋은 원주민과 등대가 있다. 이 등대는 뉴칼레도니아의 산호초 지역으로 들어간 많은 배가 좌초되자 누메아에서 본국 프랑스에 등대 설립을 요청해 나폴레옹3세가 설치했다. 56m 높이의 만만찮은 등대에 오르려고 247개의 계단을 밟았는데 운동 부족에 뒤엉키는 다리로 마지막 계단에 섰을 때 정상의 풍광이 가쁜 숨을 다독였다. 산호가 투영돼 엽서에서 봤음직한 모습으로 펼쳐내는 남태평양의 고운 빛깔 바다가 아파트만 있는 동네,차가운 지구 모퉁이에서 날아온 존재를 위로한다.



■마음에 등록된 그랑테르의 블루리버 공원

뉴칼레도니아는 지난 7월 섬의 70%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1600㎞에 달하는 암초에 둘러싸여 형성된 지상 최대의 석호와 2만4000㎢에 달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호초호,섬 주위를 둘러싼 라군이 그 주역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마음에 등록된 것은 본섬 '그랑테르'와 블루리버 공원이다. 원래 호주 대륙의 일부였던 그랑테르는 빙하기가 끝나면서 수면 상승으로 섬이 됐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주변의 섬들과 달리 다양한 고대 생물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네 번째로 다양한 생물 종을 보유한 섬이며 토양 성분이 중생대 쥐라기시대 것과 같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해마다 100여종의 새로운 식물 종이 발견돼 세계 식물학자들을 열광시키는 꿈의 섬이라고 가이드 프랑수아가 목소리를 높여 설명한다. 4만여종의 식물 중 뉴칼레도니아 특산 식물이 3000여종에 이르는데 그는 그것들을 전부 다 보여주고 싶다는 듯 걸음과 말의 속도를 서두른다. 특히 그랑테르의 남부에 있는 블루리버 공원은 '에코투어리즘'의 노른자위다. 에코투어리즘의 메신저 프랑수아가 고이 안고온 상자를 열어 보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면서 '아로카이아'를 조심스레 꺼냈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니 유심히 봤다. 2억2000만년 전 지구상에 처음 출현한 소나무 아로카이아 솔방울이 진화를 거듭해 다양한 형식의 솔방울과 솔잎으로 변화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프랑수아의 자랑은 끝이 없다. 지구상에 남은 원통소나무 19종 가운데 13종이 뉴칼레도니아에만 있단다. 그가 야심차게 안내한 숲길엔 1000살 된 40m 높이의 카우리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최근엔 700살 된 카우리나무 350그루가 새로 발견됐다니 경이로움이 끝이없다. 그러나 블루리버 공원에서 가볼 곳으로 밑줄 쳐둔 곳은 따로 있다. 댐을 막아 만든 '야테호수'다. 빗자루를 탄 마녀라도 나올 듯 기이한 인상이 한번 보면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정적을 풍기는 사진을 봤을 때 형광펜으로 점찍어둔 곳이다. 물에 잠긴 숲은 촘촘히 박힌 고사목들 안에 눈의 여왕이라도 나올 듯 슬프도록 아름답다.

오후가 알맞게 익었을 땐 '카구'새를 보러 산중으로 잠입했다. 재주꾼 프랑수아가 '구구구' 카구 울음소리로 유혹한다. 카구가족 세마리가 뒤뚱뒤뚱 나오자 그는 "당신들 운이 좋다"란 말을 연발한다. 사람을 도통 무서워할 줄 모르는 이 가녀린 가족을 한뼘 거리에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도도새처럼 인간에게 멸종당할까봐 두려움이 앞섰다. 400여마리만 남았다고 하니 그대들 안녕하길….

■흐르는 강물처럼 일데팽 가는 길

뉴칼레도니아를 소개하는 관광사진에 꼭 실리는 명소,태양의 섬 일데팽으로 향한다. 고개를 아무데나 돌려도 색연필로 스케치한 듯한 카누메라 해변의 뽀송뽀송한 모래를 밟으니 새털이 돼 날아갈 듯 경쾌하다. 그런데 숨겨진 보물은 오로베이로 향하는 강에 있다. 바위들이 바다를 막아 산호 수영장이 저절로 형성된 풀로 가기 위해서는 20분 정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 강 풍경이 수채화처럼 하늘거려 마음을 흔들어댔다. 태곳적부터 있었다는 아로카이아 소나무들이 초록 실루엣으로 바닥까지 말갛게 투영돼 감청색으로 흔들리고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햇살이 강으로 내려와 얕은 깊이에도 눈이 부시도록 몽환적이라 걷기가 벅찼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강물이 떠올랐다.

플라잉낚시를 통해 보여주는 가족사가 잔잔하게 펼쳐지는 이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살아남은 자들의 상실감과 깊은 고독이 강물처럼 흐른다. 그 강은 멈춰있지 않고 흘러 혼자 남은 형을 위로한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는 훗날 말했다. "완벽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고 강에 얘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던 그 강이 발 아래 스크린돼 펼쳐지니 내안의 무언가가 행복으로 돌진한다.

누군가 인생은 예술품이 아니라 했고,순간은 영원하지도 않기에 충만함이 보름달처럼 가득찬 이 순간 역시 영원히 기억될 순 없겠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기억의 언저리에 뉴칼레도니아에서 보고 느낀 감흥들이 흘러 때때로 도시에서 지친 자를 위로할 것이라 되뇌며 통투타공항에 작별인사를 건넨다.

오흐부아~.

뉴칼레도니아=전혜숙 기자 hayonwy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