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흠 <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의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시작으로 유수 금융기관의 손실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산업은행이 주도하여 158년 역사를 가진 월가의 명문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 홀딩스의 인수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리먼같이 위험에 빠진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인수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설령 인수하더라도 공적 기관보다는 민간자본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IB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는 없으나 전통적으로는 증권의 인수와 중개 등 투자의 형태로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을 말한다. 그러다 IB 업무영역이 인수ㆍ합병(M&A)과 구조조정,프로젝트파이낸싱(PF),벤처캐피털에 이어 자산관리와 직접투자 등으로 넓어지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급부상했다.

고위험ㆍ고수익 전략은 사업 여건이 나빠지면서 순식간에 수렁에 빠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 동안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기회 삼아 호황을 누리던 IB들이 위기에 처하면서 헐값에 시장에 나오고 있다. 가격이 많이 떨어졌음에도 팔리지 않는 자산과 유가증권에 돈을 담가둔 리먼도 그 중 하나이다.

IB는 자본시장 및 구조조정시장의 발전과 이를 통해 국가 성장잠재력을 구현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으로 관심을 받아 왔다. IB를 육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정부가 마련한 자본시장통합법은 내년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토종 대형 IB의 탄생은 요원하기만 하다. IB 산업은 인적자원,정보생산능력, 신뢰와 평판 등을 핵심 역량으로 한다. 또 고객인 기업과 투자자, 투자은행간 그리고 대내적으로 종합적이고 협동적인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데 우리의 경험과 자본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글로벌 IB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가격이 많이 떨어진 글로벌 IB를 인수해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IB 경험을 전수하며, 네트워크를 신속히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리스크도 커서 자칫 부실만 키워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하는데 리스크를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위험 부담 없이 금융선진화의 모멘텀을 찾기는 어렵다.

그 동안 정부가 중화학산업을 육성해 성장기반을 마련했고 벤처산업을 지원해 IT강국으로 산업을 업그레이드시켰다면 이제는 금융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글로벌 IB 인수를 국가 발전을 위한 아젠다로 삼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뿌린 씨앗이 꽃이 피울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며 꾸준히 돌봐야 한다.

민간 자본은 단기 수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경기나 시장 변동에 민감한 시기에 선뜻 나서 장기적인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으로 대규모 투자 리스크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산업은행이 나서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면 금융선진국으로의 도약에 발판이 될 것이다. 산업은행은 건실한 고객 기반과 자금력을 갖고 있어 리먼의 세계적인 IB 브랜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인력, 해외 네트워크와 결합한다면 국내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도이체방크나 UBS 등 세계 유수의 글로벌 IB들의 성장 사례를 보면 활발한 M&A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지금의 성장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