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의 평균 수명은 10년 안팎.더구나 창업 기업이라면 5년 뒤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30% 수준으로 떨어진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글'에서 기술 자금 인력 마케팅 등 4대 생존요건을 모두 갖추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사별한 남편의 회사를 떠맡은 '미망인 주부CEO'는 매일 가시밭길을 걷는 신세나 다름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최고경영자(CEO)로,어머니로,며느리로 1인3역을 감당하면서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는 이들의 분투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은숙아 난 괜찮아." 가슴을 움켜쥔 채 거실 바닥에 쓰러진 남편은 119구급대가 들어오자 정신이 돌아온 듯 말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인맥관리솔루션 국내 1위 업체 한국인식기술의 송은숙 대표(42).초등학교 여교사였던 그가 인맥관리 전문가로 변신한 것은 2002년 9월 남편의 돌연사 때문이었다.

[가업 잇는 여성 CEO] (1) 한국인식기술 송은숙 대표 ‥ 남편 명함첩 정리하다 번뜩! 아이디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의 고(故) 이인동 박사는 문서인식 기술 국내 1인자로 1993년 한국인식기술을 창업했다. 이 회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종이문서 인식 솔루션 '글눈'은 문서를 컴퓨터에 저장하기 위해 몽땅 타이핑했던 불편을 일소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벤처기업 대상(대통령상)을 받는 등 관련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코스닥 등록을 한 달 남겨두고 IR(기업공개설명회)준비를 위해 과로한 것이 화근이 됐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우는 것 밖에는…."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상속세였다. 창업 9년간 번 돈이 거의 없었는데도 무려 37억원이 부과됐다. 남편 지분이 80%에 달하다 보니 대주주 가산세까지 붙었다. "장외시장에서 2~3명이 몇 천주 거래한 금액을 근거로 평가했더군요. 기가 막혀 세무서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

이대로 죽어버릴까 몇 번 생각했다가 어린 세 딸 때문에 마음을 다시 잡았다. 더구나 잠을 쫓기 위해 코 밑을 볼펜으로 찌르며 기술 개발에 열중했던 남편을 되돌아보면 회사를 처분할 수 없었다. 결국 아파트와 회사 부지를 팔고 저축한 돈을 탈탈 털어 만든 5억원과 주식으로 세금을 냈다.

2005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18년의 교사 근무 경력밖에 없던 그에게 모든 것이 어려웠다. 컴퓨터 용어는 고사하고 팩스 사용법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남긴 30여개의 명함첩을 정리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문서인식 솔루션으로 수많은 명함을 간편하게 정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방대한 인맥이 돌파구가 된 셈이죠."

남편이 개발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연구원들과 함께 개발한 것이 명함을 스캐너로 읽어 전화번호와 주소,이메일 등을 자동으로 분류ㆍ저장할 수 있는 개인용 인맥관리 솔루션 '하이네임'이었다. 첫 버전을 출시한 2004년에는 흐린 글자 등을 읽지 못해 정확도가 90%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 세계 수천 가지의 명함을 수집,분석한 끝에 2년 만에 정확도를 97%까지 끌어올렸다. 거래선에 책과 편지,음악CD 등을 선물하며 영업력을 키웠다.

이 덕택에 개인용은 10만세트가 팔렸고,기업용은 현재 청와대 지식경제부 한국전력 등 500여개 기관 및 기업,단체에 공급됐다. 매출액은 올해 4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최근엔 하이네임을 업그레이드한 '서프(Sucess Friend)'를 내놓았다.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17개 언어를 인식하고,일정이나 기념일에 맞춰 휴대폰 문자(SMS)나 이메일 전송이 가능한 게 특징.송 대표는 "관계의 중요도나 직급,지역 등에 따라 명함 분류가 가능하고 통계도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달에는 종합 인맥관리대행 포털도 오픈할 예정이다. 최종 목표는 글로벌인맥 통합관리 포털인 GBNS(Global Business Networking Solution) 개발.

"세 딸들에겐 무엇보다 인맥을 물려주고 싶어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란 점을 남편이 깨닫게 해줬으니까요. 나중에 남편을 만나면 이런 저를 칭찬할 것이라고 믿어요."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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