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 저 선수 안 빼고 그냥 내보내내.”
“한국팀에겐 마지막 기회인데 제아무리 이승엽이라도 더 이상 뭘 바라겠다는 거야? 그만큼 기회를 주었으면 됐지.”
지난 22일 올림픽야구 한일 준결승전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심지어 야구 해설자 조차도 김경문감독에게 불만의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한 토로는 무리가 아니었다. 이승엽선수는 지난 7경기의 타율이 22타수 3안타의 타율 1할3푼6리였다. 아시아의 홈런왕, 라이언 킹의 명성이 무색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이승엽은 한일전 당일 최악이었다. 치고 달리는 작전이 걸렸음에도 배트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 선행주자가 아웃당하고 자신마저 무기력하게 삼진을 당했다. 4회 1,3루에서는 병살타를 쳐, 힘들게 찾아온 동점 분위기에 초를 쳤다.

TV앞에서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세 번째 타석에서도 어이없는 헛스윙. 타율은 1할2푼으로 바닥모르고 곤두박질쳤다. 그는 슬럼프가 아니라 정말 한물간 선수일까.

그리고 2:2동점 8회 말. 역전주자가 나갔다. 절호의 기회.

사람들은 누군가가 통쾌하게 해결해 주길 바랐다. 과연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 초미의 관심이 김감독에게 쏠렸다. 그러나 대타 교체 사인은 없었다. 순번대로 이승엽이 타석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눈에 보더라도 그는 이미 주눅들어있었다. 감독의 뚝심인가 무모함인가.

일본불펜은 일관되게 변화구와 슬라이더를 조합하며 난조에 빠진 이승엽의 눈을 현혹시켰다. 1루에 주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구석구석을 찌르며 마치 병살타를 유도하려는 듯 한국의 4번 타자를 농락했다. 왕년의 홈런왕은 바깥쪽으로 벗어나는 공을 따라다니며 커트하기에 바빴다. 체면 버리고 차라리 번트라도 대든지.

갑자기 김감독은 발 빠른 이용규선수로 주자로 교체했다. 타자를 교체해야지 주자는 왜 교체하나. 속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교체가 그날 승부의 전환점이 될 줄이야.

일본 투수의 공배합이 달라졌다. 2루 도루를 막기 위해 변화구나 슬라이더가 아니라 빠른 공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인구로 스트라이크 존을 비켜 낮게 깔려 들어왔다. 이승엽의 방망이가 돌아갔다. 외야의 뜬 공으로 생각했지만 일본 외야수는 걸음을 멈추고 담장을 넘어가는 공에 망연자실했다.

김감독은 사람을 함부로 바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선수만 믿는 무모함도 아니었다. 선수 컨디션과 상황에 맞게 쓰임을 맞추어 뒤를 지원했다. 그렇게 결승을 치렀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세상에 많고 많은 게 사람이다. 그러나 찾아보면 없는 게 또한 사람이다. 그만큼 자신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귀하다는 말이다.

작은 목수는 나무를 사지만, 궁궐의 대목장(大木匠)은 산을 산다. 작은 목수는 필요한 나무만 골라 사지만, 대목수는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모든 나무가 쓰임새 있기에 산의 전체 나무를 산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작은 목수의 관점이다. 대목장이라면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인재다. 단지 목수가 쓰임새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쓸모없다고 보는 것이다.

‘나에겐 왜 좋은 인연이 오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무모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좋은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연의 쓰임을 모르는 것이다. 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인재로 널로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왜 인재를 잘 알아보지 못해 사람이 귀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방의 단점부터 보기 때문이다. 단점을 보기 시작하면 10개의 장점이 있어도 1개의 단점에 가려지기 마련이다. 장점부터보시라. 10개의 단점이 있어도 1개의 장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CEO다. 사회는 이 한 개의 장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마산의 모전자기업체 회장은 인재를 만들어 쓰는 전형이었다. 거짓말 잘하고 주먹을 잘 쓰는 생산 공장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영업직으로 돌렸다. 나서기 좋아하는 직원은 학력에 관계없이 홍보 일을 주었다. 결벽증이라고 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의 직원은 불량검사실로 자리를 내주었다. 이렇게 재배치된 인력들은 세계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했다.

우리는 정리해고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는 자기에게 온 인연을 악연으로 바꾸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한다. 작은 인연을 큰 인연으로 만들지는 못할망정 찾아온 인연을 악연으로 돌려서야 뒤끝이 좋을 리 없다.

세상에 쓸모없고 재능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이 누구나 장점이 있다. 단지 지도자가 잘 못 알아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장점이 보일까. 남들이 뭐라 해도 자기 자식이나 연인은 모든 게 좋게 보인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장점이 보인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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