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이 다음달 1일 취임 10돌을 맞는다.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1998년 8월 26일 타계하면서 SK호의 선장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든 지 10년이 흐른 것이다.

최 회장이 그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SK㈜의 대표이사에 앉은 것은 1998년 9월 1일.
당시 최 회장은 전문경영인인 손길승 전 회장과 투톱 체제로 그룹을 이끌었다.

외환위기 이후 몰아친 구조조정의 태풍을 정리하고 그룹내실을 다지기 위해 손 전 회장과 역할을 나눠 기업경영에 주력했던 것.
현재 외형상으로 뜯어보면 최 회장 체제 10년은 일단 성공적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 평가이다.

최 회장 취임 당시 재계 서열 5위로 34조원 수준이었던 SK그룹의 자산은 올해 현재 72조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재계 순위도 3위로 올랐다.

1997년말 36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78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9천억원에서 4조5천억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가시밭길을 거쳐야 했다.

최 회장 자신은 물론 그룹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어놓을 정도의 시련의 연속이었다.

◇ SK글로벌 분식회계.소버린 사태..벼랑 끝 위기 극복 = 2003년초에 불어닥친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파문은 결국 최 회장과 손 전 회장 등 `투 톱'이 모두 구속되는 사태로 발전했다.

최 회장은 당시 SK글로벌의 채무를 줄여 1조5천587억원의 이익을 부풀리는 등 분식회계를 하고 본인 소유 워커힐호텔 주식과 SK C&C 소유의 SK㈜ 주식을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비상장주식인 워커힐 호텔 주식을 `상속 및 증여세법'(상증법)에 따라 과대평가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받고 풀려나는 시련을 겪었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그해 4월에는 소버린자산운용이 SK㈜의 지분 14.99%를 매입하면서 경영권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2년간 소버린의 집요한 공세에 시달린 끝에 겨우 안정을 찾은 최 회장은 이후 그룹 오너로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 `최태원식(式) 글로벌 경영' 아직은 실험단계 = 최 회장은 SK사태와 소버린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난 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통한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며 행복을 나누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 심기에 힘쓰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7월 1일에는 그룹의 숙원이었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특히 5월말에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오랫동안 발목을 잡아오던 분식회계 관련 재판문제도 완전히 털어냄으로써 법률적 쇠사슬에서 풀려난 데 이어 최근에는 8.15 광복절 특사로 사면받아 도덕적 굴레도 벗어던졌다.

최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글로벌과 변화, 속도, 행복을 강조한다.

올해 초 사내방송을 통해서는 "변화는 기업경영에서 선택이 아닌 생존과 성장의 조건으로 세상의 변화 속도보다 우리의 변화 속도가 느리다면 우리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며 스피드 경영을 주문했었다.

또 최근 열린 신입사원과의 대화의 시간에서도 "글로벌리티'(Globality. 기업의 글로벌 역량이나 글로벌화 정도를 가리키는 신조어)를 강화해 변화에 대처하는 스피드와 유연함으로 미래 행복의 파이를 키우자"면서 "특히 그 행복의 파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이를 통해 좀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최태원식(式) 경영이 가시적 결실을 맺었느냐를 두고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재계 일각에서는 SK의 양대 핵심 주역인 SK에너지와 SK텔레콤은 고 최종현 전 회장이 이뤄놓은 사업으로, 최 회장이 와서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 최종현 회장은 1980년과 1993년에 당시 민영화 대상이었던 대한석유공사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에너지와 정보통신이라는 SK그룹의 밑그룹을 완성했다.

하지만 최 회장이 그룹을 승계한 후 SK텔레콤과 SK에너지의 경우 국내시장의 포화로 국내에서는 거의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상태인데다 의욕적으로 진출한 해외에서도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미래 먹을거리 찾아라" = 최 회장은 갈 길은 아직 멀다.

이를 의식한 듯 최 회장은 최근 서울 서린동 SK본사에서 열린 고 최종현 전 회장 추모사진전에 참석해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아직은 멀었으며, (선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난 10년간의 소회를 밝혔다.

최 회장은 하지만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패기와 열정을 무기로 향후 그룹성장의 신동력이 될 기술을 확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최 회장은 특히 "에너지와 환경, 생명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SK만의 기술로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실제로 최 회장은 광복절 특별사면이 단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 11일 1박2일 일정으로 SK그룹의 미래성장 원천이 될 생명공학 기술과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연구, 개발하는 대덕 연구단지의 SK기술원을 찾아 젊은 연구원들과 그룹의 장래를 짊어질 연구개발과제들을 두고 격의 없는 토론을 벌였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특히 신재생 에너지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앞으로 우리가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사업분야는 기후변화와 환경, 식량과 에너지 등과 관련된 분야로 이런 분야에서 열심히 기회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SK 관계자는 "앞으로도 중장기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최 회장의 현장경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은 지주회사 체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 C&C의 기업공개를 내년 6월까지는 실시해 순환출자구조의 고리를 끊어야 하며 유일한 금융계열사인 SK증권의 매각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