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라면 박태환 같은 선수가 나오기 힘들었겠지. 아마"

1948년생 '건국둥이'들이 건국을 되돌아 보고 우리의 미래를 그려 보기 위해 지난 12일 한국경제신문사에 모였다.

신상훈 신한은행장, 오영교 동국대 총장, 임종욱 대한전선 부회장,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 등 네 명의 동갑내기 CEO들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박태환 선수를 화제로 어려웠던 자신들의 지난 나날을 회상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방담에서 초로의 CEO들은 어릴적 이야기를 하며 다시 소년이 되기도 하고 청년이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건국 60주년] '건국둥이' 4인 특별대담


"잘못하면 나도 저렇게 굶어 죽는구나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 신상훈 행장(사회) = 건국 60주년을 맞아서 대한민국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1948년생 맞으시죠?

△ 오영교 총장 = 난 원래 47년생인데 호적이 잘못됐어. 하하.

△신 행장 = 아무튼 주민등록번호가 '48'로 시작하시니 이 자리에 계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웃음)

그건 그렇고. 어린 시절 얘기부터 해 볼까 합니다.

우리 건국둥이들은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태어나서 6·25, 4·19, 5·16 등 격동의 현대사를 모두 겪었습니다.

누구보다 배고픔이 뭔지도 잘 아는 세대입니다.

유년 시절 부족한 게 많았을텐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어떤 부분이 가장 아쉬우신지요?

제 경우에도 하고 싶었던 게 많았지만 여건상 그러지 못했던 기억이 많습니다만.

△ 오 총장 =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인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공업입국을 주창하면서 전국에 5년제 공전(공업전문학교)을 6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 아버지가 아들 진로를 놓고 공무원하시던 형님뻘 되는 친척에게 자문을 구하셨어요.

그 분이 대통령이 역점을 두는 곳이니 공전을 가는 게 어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전공전 시험을 봤죠.

필기시험은 좋은 성적으로 붙었는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진거라.

알고 보니 색약 검사에서 문제가 생긴 거였어요.

중학교에서 검사할 때는 정상이었는데 아마 공전에서 실시한 색약검사가 훨씬 정교했나 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후기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어요.

△ 임종욱 부회장 = 그때는 모두 가난했으니까.

저는 서울사대부중을 특차로 입학했는데 졸업 무렵 집안이 어려워져서 상업학교를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린상고 야간에 갔지.

그때는 좌절도 하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고 나와서 고려대 경영학과 간 것이 오늘날 기업체 사장이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 신 행장 = 유년시절 질문을 하나 더 할까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장기의 계기랄까 사건이 있었을텐데.

△ 정 회장 =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 부황 걸린 사람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오랫동안 못 먹고 하면 살가죽이 부풀어 오르고 얼굴이 누렇게 뜨고 그러는 부황에 걸리잖아요.

하루는 어머니가 뒷집에 가보라고 하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인기척이 없다고 하시면서….

찾아 가보니 퉁퉁 부은 채로 사람들이 누워 있는 거예요.

굶고 있는 게 창피해서 바깥에 나오지 않은 거였지….

죽도 가져다 주고 그랬는데 어린 마음에 무척 많이 놀랐어요.

그때 "잘못하면 나도 저렇게 굶어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두려움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이어진 것 같기도 해요.

△ 신 행장 = 맞아요. 그 시절에는 다들 어려웠죠.

왜 교복도 선배들한테 얻어 입었잖아요.

그 큰 교복을 입고 학교까지 왕복 40리길을 걸어다녔어요.

등굣길에 선배들 좇아 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였는데.(웃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건강에 엄청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정 회장 = 옷 얘기를 하니까 생각나는데. 국민학교 다닐 때였나.

구호물자를 나눠준 적이 있어요. 나는 장갑이나 하나 받았으면 했는데 난데없이 여자 스커트를 주는거라.

큰누나가 한동안 잘 입었지. (웃음)

△ 오 총장 = 어릴 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공부할 교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많이 했지.

초등학교 때 학교가 분교였는데 건물이 달랑 하나 있었어요.

거기는 고학년들이 쓰고 나같은 저학년들은 동네 헌 방앗간에 가마니를 깔고 겨울에 공부를 했어요.

겨울 지나면 학교 옆 야산에 있는 나무그늘 밑에다 각자 자기자리를 큰 돌로 만들었어요.

돌 굴리다 손도 많이 깨졌지.

그러다 비가 오면 다 보따리를 싸서 선배들이 공부하는 교실 옆 복도에 줄줄이 앉았습니다.

거기서 선생님 얘기하는 거 엿듣고 뭐 그랬지.

그래서 공부할 장소만 있으면 최고겠다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대학교 총장이 됐나 몰라. (웃음)

△ 임 부회장 = 간식이라는 게 특별히 없던 시절이었잖아요.

배급받은 우유를 집에서 찌면 딱딱한 돌처럼 되는데 그걸 주머니에 넣고 먹다가 또 넣어 놓고 그랬는데.

주거 환경도 방 하나에 식구들이 다 같이 자는 건 예사였고.

하지만 샛강에 수영가고 메뚜기 잡고 그러면서 건강하게 지냈어요.

정신적으로는 지금 사람들보다 풍요롭지 않았나 싶어요.

△ 신 행장 =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다고 하셨지만 지금 세대랑 비교하면 모자란 게 많던 시절이었죠.

'이런 게 있었다면 지금 젊은들보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것이 있다면.

△ 정 회장 = 교육과 의료의 기회가 박탈됐던 시기였죠.

중학교 가는 비율이 20%도 안 됐고 요즘 의료 수준이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어요.

저도 지금 어금니가 없는데 어릴 때 뽑아버렸기 때문이에요.

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냥 뽑아버리던 시절이었죠.

△ 오 총장 = 저도 그랬어요. 제가 살던 면에는 치과병원이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위생병을 하던 사람이 동네 사람들 치아를 모두 치료했죠. 한 번은 이가 아파 그 사람을 찾아갔더니 다짜고짜 이마를 기둥에 밀어붙이더니 이를 빼 버리는 거예요.

아마 그때 사용한 기구가 공업용 펜치였을 거에요. 얼마나 놀랬던지.

그때부터는 이가 아파도 그냥 버텼어.

그래서 내 이가 지금 다 썩었지. 나중에 돈 많이 들었어요.

△ 신 행장 =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상사들한테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내가 너희 때는 이랬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들려 주시죠.


저는 신입사원 시절 선배들한테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 임 부회장 = 1974년에 대한전선에 입사했는데 그 당시 회사가 재계 10위권에 속할 정도여서 일이 무척 많았습니다.

인천과 구미에 TV공장을 새로 짓고 막 그러던 때였어요. 하지만 사무환경은 열악했죠.

계산기가 없어서 주판으로 모든 걸 다 했어요.

좀 지나니까 돌리면 '땡' 소리나는 계산기가 나오더구만. 아무튼 장부는 펜으로 일일이 다 써야 했고 결산서 만들려면 먹지 대고 하나하나 눌러서 썼어요.

매월 물품세 특별소비세 등을 신고해야 하는데 시간에 못 맞추면 가산세를 물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야근을 밥 먹듯이 했죠. 야근할 때면 제일 졸병이 저녁 무렵 석유를 사오는 게 일이었지요.

겨울 밤에는 건물 난방을 끄니까 석유곤로를 피워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는 상하관계가 매우 엄격했어요. 제가 경리과였는데 경리과장이 회식하자 그러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참석했어요.

△오 총장 = 지금 같으면 직원들이 웬 민폐냐고 그러겠지.

△정 회장 = 참 열심히 살던 시절이었어요.

우리는 중소 선박회사였기 때문에 대기업의 일감을 많이 받았는데 삼성 같은 경우 보통 밤 11시, 12시까지 불이 안 꺼졌죠. 그 시간에 전화통화도 하고 그랬어요.

현대도 마찬가지였죠. 화물 싣는 작업장에 가보면 현대 직원들이 밤 12시까지 일하다 새벽 다섯시에 나오는 거예요.

우리 직원들은 당연히 그 사람들보다 더 늦게 들어가고 더 일찍 나왔죠.

거의 군대였지. 토요일 출근하고 일요일도 거의 나왔죠. 일요일에 회사 나오는 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 신 행장 = 세월이 흐르면서 업무 환경도 급변했습니다. 컴퓨터나 인터넷 등이 짧은 시간 안에 보편화됐고요.

업무환경 변화에는 어떻게 적응하셨는지요? 스트레스는 없으셨나요?

△ 임 부회장 = 일에 공백기가 있다가 다시 들어가면 바뀐 환경이 어렵겠지만 늘 하는 일이라….

끊임없이 생산성을 추구하던 시절이라 바뀐 업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항상 야근을 하는데 계산기가 새로 나오면 바로 적응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스트레스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네요.

[건국 60주년] '건국둥이' 4인 특별대담


△ 정 회장 =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잘 모르겠네요. 배워야겠어요.

조그마한 장사라도 좌판을 펴 놓고 있으니까 항상 새우잠을 잡니다.

다 노출된 기술이고 그래서 걱정되는게 많고.

잊어버리려고 해도 잘 안되고 힘들 때가 많아요.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성공하신 분들이 다 그렇겠지만 젊었을 때부터 '나 저렇게 돼야지'라고 생각해서 성공한게 아니라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아니겠어요?

△ 신 행장 = 요즘은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예전만 못하다고 합니다. 젊은 친구들일수록 더 그렇고요.

평생 직장에 대한 개념이 사라져서 그런 건지.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사회 선배로서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 임 부회장 = 직장생활하다 보면 본인이 희망하는 부서가 아닌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경리부에 배치됐는데 우선 일을 잘해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일에서 힘이 생기데요. 직급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힘없이 일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신입사원 때부터 주어진 환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졌던 거죠.

인천공장에 가라고 하면 인천으로 가고 안양으로 가라 그러면 안양으로 가고.

이렇게 보낸 사회 초년병 시절이 나중에 결정적으로 일해야 할 때 밑거름이 됩디다.

순응하고 인내하며 길게 보고 승부하는 것이 직장생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정 회장 = 전적으로 임 부회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모든 사람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장점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쓰임새가 있습니다. 그리고 쓰임새가 있는 사람은 꼭 쓰입니다.

일을 하고자 하는 흔들리지 않는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이게 없으면 주위에서 도와줄 수가 없어요. 기다리면 기회가 반드시 옵니다.

△ 임 부회장 = 우리가 얘기하는 걸 요즘 세대가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평생 직장도 아니고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건데 뭐 어떠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그걸 땀 흘리면서 해야 합니다.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더라도 미래의 몸 값이 쌓인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하는게 필요해요.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일 잘하는 사람을 꼭 찾게 됩니다.

어디에 가 있더라도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반드시 발탁돼서 옵니다.

△ 정 회장 =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상관하고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상관이야말로 자기를 키워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부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상관은 그만큼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겁니다.

△ 신 행장 = 우리 때는 갈 수 있는 직장이 빤했잖아요. 지금은 선택의 폭이 넓은데 미래 유망 직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 회장 = 바다하고 관계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앞으로 해양산업이 유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육지는 한정돼 있고 인구는 많아지니까…에너지 관련 산업도 괜찮을 것 같고.

△ 신 행장 =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니까 헬스케어 관련 분야에서 기회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인재 양성이나 지식컨설팅 분야도 급부상할 것 같고요. 금융산업도 유망합니다.

금융자산관리 투자분석자산컨설팅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죠.

△ 임 부회장 = 사람들이 기피하는 쪽에서 오히려 수요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엔 엔지니어들도 전자쪽으로만 가려하고 강전(强電·공업용 대규모 전력) 쪽으로는 안 옵니다.

사실은 오히려 강전 쪽으로 가는게 나을 듯 싶은데.

잘 살펴보면 절대적으로 수요가 부족한 곳이 많습니다. 남들이 안가는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 정 회장 = 100% 공감되는 얘기입니다. 독자들이 좀 전에 임 부회장님이 하신 말씀만 읽어도 본전은 뽑겠는데요. (웃음)

△ 신 행장 =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꿔 보겠습니다. 외국에서는 한국 경제의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 회장 = 교육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건국 초창기 지도자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방향을 잡은 것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 부회장 = 정신력이 아닐까요. 올림픽에서도 나타나듯이 '헝그리 정신'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살기 어려운 시절 적당한 동기 부여를 한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공무원 기업가의 역할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창업 1세대의 도전 정신은 지금의 한국 경제를 일군 토양입니다.

△ 오 총장 = 우리 어렸을 때를 되돌아보면 필리핀 태국 미얀마 등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나라였습니다.

몇 년 전 필리핀 지도층과 식사를 하는데 그들이 "필리핀에 박정희 대통령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잘살고 있을 텐데…"라는 말을 하더군요.

또 우리 국민들의 강한 열정을 꼽고 싶습니다. '빨리 빨리' 문화를 나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어요.

개발 연대에 공무원들의 희생도 컸습니다.

△ 신 행장 = 요즘 우리 경제가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오 총장 = 일한 사람이 대우받고 열심히 한 사람이 대접받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 결과로서 가진 사람, 번 사람의 가치가 존중돼야 하고요. 절대 사회적 공격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벌어서 쓰는데 자꾸 손가락질받으면 누가 성장 동력을 만들겠습니까.

그러니까 기업들이 자꾸 밖으로 나가고 투자고 하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기업들을 비난하는 것이나 적대적인 노사관계도 문제가 있습니다.

부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고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국부로 축적되는 것 아닐까요.

△ 임 부회장 = 기업하는 사람들은 성장하려는 욕구가 충만합니다.

그러나 좌우 갈등 등으로 사회가 불안하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없어요.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책임질 수 있는 리스크의 한계를 알지 못하면 투자 못하는 거거든.

정부가 불안한 것을 안정시켜 주고 일관성을 유지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해요.

△ 정 회장 = 개인도 정부도 사회도 남의 탓에 빠져 있으면 성장이 안 됩니다. 자기 분야를 개선하고 자기 분야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매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쏠려 있는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야 할 시점입니다.

△ 신 행장 = 앞으로 보고 싶은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 오 총장 = 기본과 원칙이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촛불 집회를 할 때도 기본을 생각해야 합니다.

집회는 국민의 뜻을 전달하고 정부의 정책을 바꾸도록 한느 것인데 그 기본이 무시되는 것은 변질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주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보여주기 위한 정책은 기본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경찰이 두들겨 맞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정 회장 =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문화와 질 높은 의료를 원합니다. 또 일자리도 바라고 국제사회에 공헌도 하고 그러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걸 이룰 수 있는 기본은 경제력입니다. 높은 수준의 문화를 원하면서도 경제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경제하는 사람들을 무슨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인식해서는 곤란합니다. 경제가 안 되면 일자리도 없고, 의료와 교육 환경도 구축이 안 됩니다.

△ 신 행장 = 한 개인이 인생을 한 나라의 역사와 나란히 놓고 되짚어 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수도, 다소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국둥이라는 조어가 시사하듯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한국의 운명과 궤적을 함께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경제 현장에서 흘린 우리의 땀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했다면 지나친 자화자찬일까요?

어땠든 60년의 세월이 흘러 이 사회의 선배가 되고 나니 책임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정리=안재석/민지혜 한국경제신문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