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 KAIST 교수·정책학 >

공기업 개혁이라는 화두는 새 정부마다 들고 나오는 약방의 감초다. 이번 정부도 출범 이전부터 민영화를 포함한 대대적인 공기업 개혁 의지를 요란하게 내세웠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진이 빠질 대로 빠진 가운데 국내외 경제 여건의 악화로 물가 불안과 성장 둔화라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맞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일본 등 전통적인 우방과 중국,북한 등과의 외교도 어렵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한동안 뜸을 들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공기업 개혁 방안은 어쩐지 김이 빠진 느낌이다. 이는 이번 정부의 공기업 개혁 의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겠지만 이번 방안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대목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기업 개혁을 각 부처에 맡긴다는 점이다. 물론 각 부처가 산하 공기업의 정책적 필요성 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어쩐지 소관 부처와 산하 공기업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산하 공기업의 수와 크기가 그 부처의 힘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되는 상황에서 민영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소관 부처가 냉철하고 원칙적이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각 부처가 나름대로 추진계획을 내 놓겠지만 청와대와 다른 부처의 눈치를 보면서 개혁 실적을 산하 공기업들에 적당히 분담하게 하는 어정쩡한 모습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둘째,이런 우려에 대비해 정부는 공기업 개혁의 '시안(試案)'을 가지고 있다지만 정작 이것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청와대 또는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나름대로 공기업 개혁의 밑그림을 가지고 각 부처의 개혁안이 이에 부합되도록 실질적인 개혁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정부가 패를 숨기고 있으면서 이해세력의 저항 등 판세를 보아 개혁의 폭과 깊이를 조절하겠다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칠 수 있다. 이는 노조 등 이해세력에게 더욱 강하게 반발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우려도 없지 않다. 각 부처도 소관 공기업별로 실질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하는데 전념하기보다는 이 숨은 패를 읽는데 매달릴 우려도 없지 않다.

셋째,공기업 개혁의 큰 대목이 몇 개 빠졌다는 점이다. 우선 공기업 개혁의 첫 단추인 기관장 선임방법이다. 이번 공기업 기관장 선임과정에서도 정치적으로 유력한 인사가 이미 점지됐다는 둥 공모제의 형식성과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고 재공모와 일률적인 공모제 시행에 따른 비용도 적지 않다. 다음은 공기업에 대한 경영평가 방식이다. 규모나 기능이 천차만별인 모든 공기업을 대상으로 유사한 평가지표에 따라 매년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이제 그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감사원 등에 의한 회계 감사를 대폭 강화해 방만한 경영과 부조리를 근절하는 것이 먼저다. 그동안의 공기업 감사 선임과정과 자질 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공기업 개혁의 정답은 없다. 그래서 신중한 연구와 광범위한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고,이번 공기업 개혁방향도 이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공기업 개혁은 정권 초기에 과감하게 추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밀어붙일 일도 아니며,현실 여건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도 맞다. 그러나 혹 설득력 있는 청사진과 구체적인 기준을 숨긴 채 각 부처를 내세워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겠다면 이는 당당하지 못하고 너무 작아져 버린 정부의 공기업 개혁의지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