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투자자인 박종군씨(41)는 지난 3월 계좌 개설을 위해 서울 천호동의 한 삼성증권 지점을 찾았다.

이 증권사가 주최하는 투자대회(3월17일~5월16일)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상담을 하던 직원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코스닥 상장기업 H사의 주가 그래프를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어왔다.

종목명을 채 확인하기도 전에 박씨는 "투자하면 절대 안 되는 종목"이라고 잘라 말했다.

순전히 그래프만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불과 며칠 후 그 직원은 박씨에게 'H사에 대표이사 횡령설과 부도설이 돌기 시작했다'고 전해왔다.

결국 이 회사는 시장에서 퇴출됐다.

박씨는 삼성증권이 지난 3월 주최한 '제1회 실전투자대회(신춘고수열전)'에서 우승한 전업 투자자다.

필명 '승부사' '절제신공' 등으로 이미 인터넷 공간에서 잘 알려진 그는 주가 그래프를 보고 매매를 하는 '차티스트(차트 투자분석가)'다.

그가 주식투자로 전 재산을 날린 후 2년간 고시원에서 공부한 것은 바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장기업들의 차트였다.

박씨는 "상한가로 가는 기업들을 포함해 그래프를 수만개 이상 모아 분석하다 보니 척 보면 어떤 기업인지 대충 감이 올 정도"라고 말한다.

그만큼 주식투자에 '열공'을 쏟아부었다는 의미다.

삼성증권이 개최한 지난 대회의 참가 인원은 총 3만3000여명.이 중 박씨가 포함된 Fn프로리그에는 1만6000명이 참가했다.

박씨는 9주 동안 3000만원의 종자돈을 2억3200만원으로 불려 수익률 444.50%로 1위를 차지했다.

투자 제외 종목에서 거둔 수익까지 포함하면 수익률은 무려 673%.당시 2위 입상자의 수익률(262.26%)과 큰 격차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모 증권투자 관련 사이트에서 10개월 만에 300만원을 3억5000만원으로 불린 투자일기를 연재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렇다면 박씨가 보유하고 있는 '차트 보는 비법'은 무엇일까.

박씨는 "복잡한 기교나 투자기법보다 오히려 기본에 충실한 단순함이 비결"이라고 답한다.

그는 "단타매매를 즐기는 투자자들은 주가가 바닥을 찍고 상승하기 직전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하다"며 "하락장에서는 여러 이동평균선이 하나로 모아(수렴)지고 단기 이평선이 장기선을 추월하는 '골든 크로스'나 그래프가 두 번의 바닥을 찍는 '쌍바닥' 이후가 좋다"고 예를 들었다.

"상승장에서는 전고점을 돌파하는 시점이 주가 급등의 신호"라거나 "상승선 각도가 75%에 근접하면 단기 투기세력이 붙은 것"이라는 분석,"거래량이 많은 종목이 좋다"는 등의 얘기는 다소 '기초 지식'처럼 들릴 정도다.

그만큼 박씨는 "자신이 잘 알고 신뢰하는 투자기법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12년여간 전업 투자를 해온 박씨는 자신만의 규칙을 세워두고 철저히 지키고 있다.

첫째 절대 미수거래(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하는 투자)는 하지 않는다.

더 크게 이익을 보겠다고 덤볐다가 하락기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유연성이다.

자신이 보유한 종목의 주가가 빠지면 상당수 개인투자자들이 고집을 피우고 자신의 '확신'을 밀어붙인다.

박씨는 그거야말로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아무리 시장 상황을 좋게 봤거나 투자 종목이 유망하다고 믿어도 미리 정한 가격까지 내려가 손실이 나면 생각을 바꾸고 손절매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손실은 적게,이익은 크게' 내기 위해서 가능한 시장을 객관적으로 보라는 뜻이다.

그는 "대신 눈여겨 봐뒀던 종목은 장 마감 30분 이내 투매가 쏟아질 때 싸게 사는 것이 데이 트레이딩 규칙을 역으로 이용하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개미투자자들이 자신의 '그릇(역량)'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박씨는 강조한다.

욕심을 부리며 점점 투자금을 늘리기보다는 자신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투자금과 투자기간을 스스로 결정하라는 것.

박씨는 "개인적으로는 대개 몇천만원,최대 2억원 이상의 돈은 굴리지 않는다"며 "아직 이 정도 규모가 수익률이 가장 많이 나는 (내) 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장기 투자자들은 주가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도 참는 매매 습관이 있고 단기 투자자들은 상한가 종목이어도 중간에 던지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나는 5~7% 수익률을 기준으로 매매를 한다"고 덧붙였다.

왜 그의 필명이 '절제할 줄 아는 신공(神工)'이라는 의미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새 같은 하락장에선 박씨의 투자기법이 어떨까 궁금해졌다.

속절없이 코스피지수가 1600선 안팎으로 하락할 때는 그도 하루쯤 손을 놓기도 한단다.

박씨는 "돈은 갈 곳이 없으면 10년이라도 잠을 잘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그는 "그러나 장이 안좋아도 시장의 돈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며 "한 예로 연일 치솟은 고유가 때문에 하이브리드 관련 주들이 큰 재미를 봤는데 성공적인 전업 투자자라면 남들보다 먼저 이런 흐름을 읽고 투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시에 박씨는 개인투자자들이 무모한 직접투자에 나서는 것에 대해 위험성을 강조했다.

20대에 의류 봉제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주식투자에 올인하면서 불과 3년여 만에 전 재산을 날리고 이후 거액의 빚까지 졌던 자신의 경험도 회고했다.

그는 "절제하지 못하고 빠져들거나 죽도록 열심히 공부할 각오가 없다면 직접투자는 그야말로 위험하다"며 "전업 투자자들의 대부분은 큰 돈을 잃고 삶의 기로에 섰던 경험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박씨는 현재 또 다른 필명으로 제2회 삼성증권 투자대회에도 참가하고 있다.

주중에는 천호동의 한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쓰면서 주식투자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아내와 세 자녀가 있는 경기도 덕소로 향한다.

주중에는 미국 증시를 확인하느라 새벽 두 시가 돼서야 잠을 청한다는 박씨.그의 꿈은 예순살까지 주식투자를 하면서 마당이 있는 근사한 집을 마련하는 것일 만큼 소박하다.

그런 박씨는 "주식시장을 떠나지 않는 한 번 돈은 진짜 내 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글=문혜정/사진=강은구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