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뇌 기능 관련 논문 속속 발표

[Science] 뇌(腦)의 신비 밝혀지나
뇌(腦)는 동물의 중추 신경계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뇌는 감각정보를 통합해 운동반응으로 나타냄으로써 본능적인 생명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고등 척추동물에게 뇌는 학습의 중추이다.

지금까지 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수행돼 왔지만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 훨씬 더 많을 정도로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지난 2주간 국내 연구진이 뇌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을 세계 최초로 규명,관련 논문이 네이처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등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잇달아 게재됐다.

국내 과학자들이 전 세계에서 경쟁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뇌연구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 기대된다.

⊙ 뇌의 시각피질이 시공간적 특징도 인식

연세대 심리학과의 김민식,이도준 교수는 인간의 측두엽 아래에 위치한 시각 영역이 색이나 모양 등의 시각적 특징과 함께 이동궤적 같은 시공간적 연속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PNAS 최신호에 실린 이 연구 결과는 뇌신경의 기능적 이해와 함께 인공 시각을 개발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은 시각적 특징과 시공간적 특징을 모두 고려해 사물을 인식하는데 지금까지 많이 연구된 시각과는 달리 물체의 시공간적인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연구팀은 정상인들에게 두 개의 똑같은 얼굴 사진을 시공간적 연속성이 있는 조건과 없는 조건에서 연달아 제시하고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사용하여 뇌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뇌의 아래부분인 '복측 경로'의 시각피질에서 두 개의 똑같은 사진이 시공간적으로 연속성을 갖는 조건에서만 혈류량 감소가 나타났다.

혈류량 감소는 학습됐음을 의미한다.

시각피질이 시각적으로 똑같은 사진이라도 시공간적인 연속성이 없으면 두 사진을 '다른' 것처럼 처리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결과는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는 달리 복측 시각피질이 시각적 특징뿐만 아니라 이동궤적 같은 시공간적 특징도 함께 처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눈의 망막에 맺히는 물체의 색,크기,모양 등은 물체가 이동하거나 관찰자가 움직일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게 된다.

그러나 뇌 시각 메커니즘이 정보처리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공간적인 정보를 시각적인 특징들과 함께 처리하기 때문에 인간이 불안정하거나 뒤죽박죽인 세상을 경험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 뇌가 동물의 적정체온을 유지시킨다

김재섭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생명활동에 최적인 적정 체온이 뇌에 의해 결정된다는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김 교수팀은 초파리를 이용해 동물에서 적정 체온의 결정이 뇌에 의해 이루어지며 '사이클릭-에이엠피(cAMP)'라는 물질의 신호체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김 교수팀은 또 사람의 체온을 조절하는 중추신경은 뇌의 시상하부에 위치하는데 초파리에서 이러한 기능을 하는 뇌신경 부위가 '머시룸보디'(mushroom body)라는 것을 밝혔다.

'머시룸보디'는 뇌 신경다발이 양송이 모양으로 뭉쳐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이다.

'머시룸보디'에서 '사이클릭-에이엠피'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피케이에이'(PKA)라는 효소의 활성이 높아져서 초파리 뇌는 높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신호를 내보낸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머시룸보디'에만 국소적으로 '사이클릭-에이엠피'의 농도를 강제로 낮추면 초파리는 낮은 체온을 유지하려 하고 농도를 강제로 높이면 높은 체온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 현상은 사람과 같은 고등동물에서도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에 의사들이 생쥐나 개 등에서 뇌의 시상하부에 '사이클릭-에이엠피' 생성을 방해하는 약물을 주사하면 체온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보고한 적은 있었으나 그 원인이 밝혀지지는 못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동물의 체온 결정뿐 아니라 한류성 어종과 난류성 어종 간의 수온 선호 차이,계절마다 이동하는 철새들 간의 차이 등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각기 다른 온도의 환경을 좋아하는지를 밝혀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자폐증 원인 밝혀

김정훈 포스텍(POSTECH)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1만명당 10~15명꼴로 발생하고 있지만 발병 원인이 지금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자폐증의 치료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연구성과를 지난달 23일 PNAS에 발표했다.

김 교수팀은 자폐증 발병 유발 단백질로 알려져 있는 '뉴로리긴(Neuroligin)'의 생리학적 특징을 최초로 밝혀냈다.

대부분의 자폐증 환자는 감정을 원활하게 표출하지 못하며 환자들의 편도체(뇌에서 감정 정보를 처리하고 공포 기억을 담당하는 처리하는 기관)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김 교수팀은 이 사실에 착안해 살아있는 동물의 편도체 신경세포에서,뉴로리긴 발현을 제어하고 신경 전달에 관여하는 AMPA 수용체와 NMDA 수용체의 신경 전달 변화를 관찰했다.

AMPA 수용체란 뇌에서 흥분성 신호를 전달하는 이온성 수용체로 빠른 시냅스 전달에 관여한다.

NMDA 수용체는 신경세포의 신경수용체로 세포의 사멸을 조절하거나 정상적인 세포 사이의 통신을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뇌세포의 사멸과 관련된 뇌졸중,정신분열증,골다공증,치매 등에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뉴로리긴 발현을 억제하면 AMPA 수용체에 의한 신경 전달에는 변화가 없지만 NMDA 수용체에 의한 신경 정보 전달 강도가 낮아지며 감정 기억 작용이 현격히 억제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뉴로리긴이 자폐증 발병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뉴로리긴의 생리적 기작이나 뉴로리긴 발현이 편도체 신경 세포의 시냅스(뉴런과 뉴런의 연결부위) 강화현상이나 감정 기억을 조절한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 없었다.

이번 연구는 자폐증의 발병 기전 중 하나를 규명해 NMDA 수용체에만 특정하게 작용하는 물질이 자폐증 치료나 증세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뇌 활동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단백질의 규명이라는 과학적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황경남 한국경제신문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