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삼양식품이 국민주라고?

교사들이 학부모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요."



대입 직전까지 성적이 나빠 갈 만한 대학이 없음을 확인하기 전에는 요지부동이다.

또 하나는 "원래 착한 애인데 친구 잘 못 사귀어서…." 자식이 말썽을 피워 교무실에 불려온 학부모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자기 자식을 가장 모르는 게 부모이고,모든 부모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든 선수다.

이런 착각을 심리학에선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뇌물수수 선고공판 때 판사가 인용해 유명해진 인지 부조화는,왜곡된 기억이 확신이 되어 이와 모순된 사실이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인간 본성을 가리킨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성적이 나쁘거나 사고를 친 것이 자신의 유전자나 그릇된 가정교육 탓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다른 데(노력을 안 한 탓,못된 친구 탓)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심리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는 얘기다.

요즘 연일 계속되는 촛불시위와 광고주 압박운동을 보면 '인지 부조화'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양식품이다.

조중동에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일부 네티즌들은 '국민기업','국민주'라고까지 부른다.

주식 10주 사주기,라면 먹어주기와 농심 불매운동 덕에 최근 2주 새 삼양식품 주가는 약 3배로 뛰었다.

라면에서 너트가 나와 식약청의 회수명령을 받은 사실도,삼양식품 측의 "원래 신문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해명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 같다.

반면 조중동이든,경향ㆍ한겨레든 신문에 광고를 안 하는 것은 매한가지인 농심은 계열사도 아닌 판매회사가 낸 광고 한 건 탓에 네티즌의 뭇매를 맞았다.

오죽하면 진보 성향의 오마이뉴스조차 '농심 불매운동 타깃이 잘못 설정됐다'고 지적할 정도다.

광고주 압박 운동도 현실에선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지만 이미 한 방향으로 내달리다 보니 멈추질 못한다.

이달 중순 한 인터넷 미디어에 '조중동 목조르면 경향ㆍ한겨레가 죽는다'는 글이 실렸다.

많은 네티즌들이 '개념글'이라고 지지하며 퍼 나르기도 했지만,달라진 것은 없다.

실제로 기자협회보의 조사에 따르면,지난 9~24일 조중동의 주요 기업 광고가 대폭 줄었지만 같은 기간 경향 한겨레도 광고가 함께 줄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아고라와 촛불시위에선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다'는 의제가 이제 신념을 넘어 우상이 되고 있다.

집단에 의한 우상화는 다른 진실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남겨두지 않는다.

정부가 아무리 추가협상을 하고 제도를 보완해도 '허울뿐인 대책','국민 기만'으로 치부될 뿐이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왜 촛불시위를 하는지보다 경찰과 시위대의 공방 그 자체가 더 부각되는 양상이다.

지난 5년여 동안 한국 사회에선 사안마다 '우리(us)'라는 범주가 생기면 생각이 다른 모두를 '우리가 아닌 자(not-us)'로 여기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우리가 아닌 자의 말은 진실이라도 못 믿는 분위기다.

이런 사회일수록 한 사람을 속이기는 어려워도 집단 대중을 속이기는 더 쉽다.

오형규 생활경제부장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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