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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버섯흰개미들은 높이가 4m나 되는 탑 모양의 둥지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주 작은 생물의 대표격인 흰개미들이 사람도 쌓기 어려운 거대한 둥지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개미 한 마리의 크기는 작고 그 힘도 보잘 것 없지만 무리를 이루면 큰 동물도 당해내지 못할 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코끼리의 전략’대신‘곤충의 전략’을 활용한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장수기업으로 성공했다는 분석결과가 나와 흥미를 끈다.

일본의 기업들은 대형화ㆍ글로벌화를 지향하는 기업의 전략인 ‘코끼리 전략’을 버리고,중ㆍ소기업 중심의 축소지향적인 ‘곤충의 전략’을 활용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수기업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을 자랑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일본 경제에 대해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세계 2대 경제 강국인 일본은 세계 최장수 기업은 물론 200년이 넘는 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일본기업의 장수요인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일본의 경우 △1000년 이상 기업은 7개 △500년 이상 32개 △200년 이상 3146개 △100년 이상 5만여 개 등이다.

200년 이상 기업을 기준으로 전 세계 5586개 가운데 절반 이상(56.3%)에 이르는 비율이다.

일본 다음은 독일(837개사),네덜란드(222개사),프랑스(196개사) 등으로 유럽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의 평균 수명은 10.4년에 불과하다.

설립 후 100년을 넘긴 기업은 두산(1896년 설립)과 동화약품공업(1897년) 2개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장수기업의 첫째 비결은 기술력이다.

1590년 창업한 스미토모금속은 액정용 2층 도금기판 세계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1874년 창업한 미쓰이금속은 휴대전화 배선기판 구리박판 시장의 40%,1876년 창업한 다이니흔인쇄는 액정용 반사방지필름 시장의 70%, 1900년 창업한 돕판인쇄는 반도체용 포토마스크 시장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회사 규모는 작다.

100년 이상 장수기업의 평균 종업원 수는 115.7명이며 89.4%가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용 인력만 580여만 명에 이른다.

일본 경제를 굳건하게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보고서는 "일본 경제가 1980년대 엔화강세와 1990년대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소재ㆍ부품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장수기업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했다.

대기업 일변도로 가고 있는 우리 경제 현실에서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 육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주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일본 장수기업들의 성공 요인으로 △한눈팔지 않고 한길로 매진하는 본업 중시 △고객과 종업원을 중시하는 신뢰경영 △투철한 장인정신 △혈연을 초월한 후계자 선정 △보수적 자금 운용 등을 꼽았다.

실제로 1854년 창업한 유신주조는 청주 제조 과정에서 쌓아온 쌀 발효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수분유지 효과가 탁월한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아토피 스마일'을 개발하기도 했다.

자식이라도 자질이 부족하면 기업을 물려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창업 이후 2대까지는 대체로 번영하지만 3대째 가서는 도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기업들이 경영권을 넘길 때는 혈연보다 능력을 중시해 '3대째는 양자(에게 넘긴다)'는 통설이 있을 정도. 실제 휴대전화 진동기능을 개발한 다나카(田中)귀금속(1885년 창업)의 현재 사장은 다나카 집안과 전혀 무관하다.

1400여년을 이어온 콘고구미의 경영주 1대 평균 재임연수가 35년이나 되는 것도 장자 상속에 얽매이지 않은 결과라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일본 장수기업들의 사례로 볼 때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한 획기적인 지원과 보상 체계 수립,인건비 절감을 위해 종업원을 해고해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로부터의 탈피,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협력체제 구축,중소기업 승계 원활화 등이 우리 경제의 주요 과제라고 지적했다.

경영 패러다임이 이제는 공룡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작아야 시장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고,수요자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할 수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도 장수를 꿈꾼다면 한 우물에 매진하고 장인정신을 키워야 한다.

기술력 못지않게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비전을 알리고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부터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