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를 목적으로 통화옵션 거래를 했다가 예상치 못한 환율 급등으로 손실을 본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1분기 중 제품을 팔아 번 돈을 다 까먹고 손실까지 본 기업이 수두룩할 정도다.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파생상품 거래를 했는데,오히려 엄청난 피해를 봤으니 해당 기업 입장에서야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다.

한 코스닥 기업 사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미국 경제가 휘청대는데 원ㆍ달러 환율이 이렇게 오를 줄 누가 예상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의 통화옵션 거래 취지가 투기보다는 환헤지라는 해석이고 보면 상품을 판 은행들에 책임을 물을 만하다.

적어도 은행은 옵션 상품의 위험을 기업보다는 잘 알고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중소기업과 통화옵션 계약을 맺은 은행을 'S기(사기)세력'으로 강하게 몰아붙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은행 책임론은 이미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은행도 할 말이 적지 않다.

상품 구조를 알리지 않고 어떻게 옵션 상품을 팔 수 있느냐는 것이다.

환율 변동폭도 고객들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했다고 한다.

통화옵션 유효구간을 정하고 약정환율을 정해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거래 기업이 무조건 이익을 보는 상품 구조가 매력적이었을 따름이라는 설명이다.

이윤 측면에서도 은행은 헤지비용을 감안한 판매마진만을 챙겼다.

선물환 거래에 비해 많이 남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답은 역시 혁신이 급속히 진행되는 금융시스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은행은 통상 단기로 차입하고 장기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유동성과 신용을 창출한다.

이로 인한 불일치로 은행들은 상당한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선진국,후진국 따질 것 없이 은행들이 자체 위험을 밖으로 전가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은행들은 모기지를 포함한 대출을 그럴듯한 파생상품으로 포장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를 누가 샀나.

바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헤지펀드 등 레버리지 거래자들이다.

이들은 감독당국의 규제를 제대로 받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은행들은 단기간에 상당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지만 시장 참가자들의 위험이 커지면서 스스로 큰 위험을 떠안게 된 꼴이다.

"감독 및 규제체계 붕괴가 서브프라임 사태를 초래했다"(폴 드 그라위 벨기에 르벵대 교수)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혁신이 진행될수록 감독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또 금융상품의 빠른 진화로 시장 참여자의 잠재 위험이 커질수록 은행이 거래의 중심축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은행의 위험도 줄여야 하지만 거래에 내재된 고객의 위험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시스템 위기를 막을 수 있다.

시스템이 무너지면 가장 큰 피해는 은행 몫이다.

수익성 못지않게 은행의 공공성이 여전히 강조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 당국도 파생상품 영업과 관련한 위험을 고지하도록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익원 경제부 차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