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 ks+partners 이사 hslee@ks-ps.co.kr >

"애가 없어졌어."

남자는 군대 다시 가는 꿈이 최고의 악몽이라면,엄마는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이 최고의 악몽이다.그런 악몽을 꾼 날은 베개가 흠씬 젖고,꿈속에서 가슴 아팠던 통증이 며칠은 간다.그런데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니….아침에 손 흔들며 첫 소풍을 간 아이가 없어졌다고 한다.

아이 봐주시는 할머니 전화는 그 말만 남기고,하필 배터리까지 떨어졌다.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둘째가 행여 강아지 구경 시켜준다는 어른 꼬임에 넘어가지는 않았을까,최근 유괴사건을 보면서 늘 걱정이었다.일단 회사를 나섰다.

찾았다는 전화만 오면 언제든 차를 돌릴 생각으로 차를 1차선으로 몰았다.학교에서 소풍 다녀온 버스를 타고 내린 지 50분이 지났는데 집에는 아직도 아무 소식 없다는 큰 아이 전화만 계속 울렸다.학교에 거의 도착했을 때 할머니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그러나 할머니 등 뒤에 숨어있을 줄 알았던 둘째는 흔적도 없다.

학교 운동장을 정신없이 헤매다 보니 저 멀리 아이가 입고 갔던 노란색 티셔츠 차림의 아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한달음에 달려가 봤지만,내 아이는 없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게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교실로 뛰어올라갔다.불이 꺼져 있었다.

아이는 집 전화번호는 물론,엄마 아빠 휴대폰 번호까지 외우고 있다.그런데 전화 한 통 없이 사라진 지 한 시간반이 흘렀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교실을 나와 어느새 달려 온 남편과 도서관,수영장을 다 뒤졌다.아이를 본 사람도,마주쳤다는 사람도 없다.

망연자실해서 운동장 한복판에 서 있는데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학교로 와서 같이 찾아주겠다는 엄마,친구랑 손잡고 어디로 걸어가더라는 얘기를 전해주는 엄마,정신없이 놀고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엄마 등.그리고 드디어 "찾았어요"란 낭보까지.

아이는 걸어서 20분 거리는 족히 되는 친구 집에 놀러가 있었다.모험을 좋아하는 친구라서 전화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신나게 놀았다나.

휴! 참았던 한숨이 한꺼번에 토해졌다.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걱정이 공포로 바뀐 악몽 같은 90분 동안 날 위로해 주고 힘이 돼준 사람은 이웃 엄마들이었다.

나름대로 혼자서도 잘먹고 잘살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은 이렇게 엄마가 되면서 깨어지고 둥글둥글 다듬어진다.이 동지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이 키우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