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방송사 총선 예측조사 결과 얘기다.

KBS MBC SBS YTN 등 방송사들은 출구 조사와 전화 조사 등을 통해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에서 여유 있는 과반을 얻을 것으로 발표했지만 결과는 아슬아슬한 과반에 그쳤다.

'저것도 예측이라고 내놓나' 싶을 정도로 예상 의석 범위를 넓게 두었지만 결과는 그 하한선에도 미치지 못했다.

예측과 실제 당선자가 바뀐 곳도 수십 군데에 이르렀다.

이로써 총선 출구 조사는 15대 총선 이후 네 번 연속 헛방을 날렸다.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 조사 또한 믿기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발표된 것인데도 조사 기관에 따라 후보별 순위와 지지율이 크게 엇갈리는 현상이 다반사로 나타났다.

같은 기관 조사에서도 날짜별로 지지율이 들쭉날쭉인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유권자들은 변덕이 죽 끓듯 지지 후보를 바꾸지는 않는다.

조사가 잘못된 것이지 유권자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여론조사 기관들이 제시하는 신뢰도와 오차 범위부터 대단히 과대 포장돼 있다고 생각한다.

총선 여론 조사의 경우 선거구당 500명 정도를 표본으로 신뢰도 95%,오차 범위 ±4.4%로 발표된 게 많다.

이는 후보 지지율에 최대 8.8%포인트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100번을 조사할 때 5번 정도 오차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통계 이론적으로 볼 때 이런 신뢰도와 오차 범위가 유지되기 위해선 꼭 지켜져야 할 전제 조건이 있다.

표본이 해당 선거구의 인구 구성에 맞춰 적절히 선정되고 응답 또한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별ㆍ연령별ㆍ학력별ㆍ직업별ㆍ소득수준별 인구 비례 등이 표본 구성에 감안돼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요인을 모두 감안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표본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는 대부분 여론조사 응답률이 10~20%대에 그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연유로 표본수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신뢰도가 이론상 수치를 크게 밑돌게 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이런 기본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오차 범위가 지나치게 큰 여론 조사를 굳이 실시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선거 전 실시된 여론 조사들의 경우 경합 지역이 60~90곳에 이르렀다.

후보자 간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 이내인 곳은 모두 경합으로 분류한 결과다.

전체 지역구가 245개에 불과하고 영ㆍ호남 지역 등은 특정 정당으로 쏠리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관심 지역은 대부분 경합으로 분류됐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궁금한 건 접전이 벌어지는 곳에서 누가 앞서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유권자들의 이런 의문을 풀어 주지도 못하고,결과적으로도 많은 곳에서 헛다리를 짚는 여론 조사라면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여론 조사의 생명은 신뢰성이다.

잘못된 여론 조사는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믿음을 갉아먹고 그 존립 기반을 무너뜨린다.

엉터리 조사를 남발하느니 차라리 조사 횟수를 줄이고,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표본 수를 대폭 확대해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택하는 게 낫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사들이 깊이 되새겨 봐야 할 부분이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