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개인의 자유가 중요한가, 국민 의무가 우선인가
모두가 군대에 가야 하는 국민개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양심적 병역거부가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19조)와 '국방의 의무'(39조)가 충돌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평생 전과자로 살아야 하는 현실이나,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다면서 실제론 군대 가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 모두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견해는 우리 사회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권리를 갖는 동시에 국가라는 질서의 테두리(국방, 치안, 안전 등) 내에서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혜택도 누린다.

권리와 혜택의 이면에는 국민으로서 의무가 필연적으로 부과된다.양심의 자유와 병역 의무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한 쟁점들을 함께 생각하고 토론해보자.

⊙ 무엇이 양심적 병역거부인가

양심적 병역거부란 '개인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의 강제'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의 평화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비롯돼 1,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퀘이커, 여호와의 증인 등의 신자들이 병역을 거부하면서 논란을 빚게 된 것이다.

1960, 70년부터는 반전운동, 평화주의 등 정치·사상적 동기나 개인적 동기에 의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거부 정도에 따라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보편적 거부' △특정 전쟁만 반대하는 '선택적 거부'(예컨대 월남전·이라크전 반대) △전쟁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량살상무기(특히 핵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재량적 거부'로 구분된다.

또 무엇을 거부하느냐에 따라, 군복무는 수용하면서 무기 사용(집총)을 거부하는 '소극적 거부'에서부터 군입대, 집총 등 일체를 거부하는 '절대적 거부'까지 다양하다.

⊙ 양심의 자유 vs 국민의 의무

사람이 속으로 어떤 생각·의지·사상을 갖든 그것은 개개인의 자유이다.

양심의 자유란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처럼 선악이나 준법 차원이 아닌 '내심의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개인의 양심이 실현될 때(외부로 표출될 때) 국가 법질서나 타인의 권리와 충돌한다면 '권리 대 의무'나 '권리 대 권리'간 상충이 생긴다.

13세기 마그나 카르타 이후 개인의 자유 쟁취 역사를 가진 영국이나 미국에선 국가가 병역은 물론 납세까지도 명령할 수 없다는 '양심적 거부'의 전통이 강하다.

대표적인 것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불복종 운동이다.

그러나 국가라는 존재는 개개인이 제각기 양심의 자유를 실현하겠다고 나설 경우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무정부주의와 다를 바 없게 된다.

개인의 자유, 소수자 인권 보호가 중요한 만큼이나 국가 법질서의 당위성도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면 양심의 자유도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2004년 병역법 88조 위헌 제청 판결문에서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이지만 기본권 행사가 타인과의 공동생활이나 국가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양심 실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곧 개인이 양심상의 이유로 법질서에 대한 불복종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 대체복무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대체복무제이다.

정부는 이르면 2009년부터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36개월간 대체복무를 허용할 방침이다.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불법·비리에 의한 병역기피자와는 다르다.

징병통지가 나오면 스스로 병무청에 찾아가 거부의사를 밝힌다는 것.

해마다 700~800명에 달하는 이들 종교적 병역거부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사회공익 분야 등에 더 긴 기간 동안 일하게 해 군복무를 대신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 대체복무제이다.

징병제를 채택한 독일과 대만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 특정 종교에 대해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점, 병역의무 이행자와의 형평,남북 대치의 특수한 안보상황 등의 이유에서 아직 반대여론이 훨씬 많다.

오히려 일각에선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는 한 대체복무제는 특정 종교 신자보다는 병역 면제자에게 적용되어야 형평에 맞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차제에 모병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군인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가고 싶은 사람만 군대에 간다면 병역기피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군 가산점 등의 각종 논란을 일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상황 탓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지배적인 실정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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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의무의 또 다른 쟁점…군 가산점 논란

'기회 손실에 대한 보상이냐, 여성·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냐.'

군필자에게 취업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군 가산점 제도 부활을 둘러싼 첨예한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국방위 표결에서 찬성 7표, 반대 2표, 기권 2표로 통과돼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고 이달 임시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법 개정안에선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이 채용시험에 응시할 경우 필기시험 과목별 득점의 2% 범위 안에서 가산점을 주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공공기관은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고, 민간기업에는 권고사항이다.

당초 군필자 가산점 제도는 40년 가까이 시행돼왔으나 헌법재판소가 1999년 "(채용시험의 당락을 좌우하는) 과도한 가산점은 남녀 평등권 침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려 폐지됐었다.

그러다 최근 한나라당 고조홍 의원 등이 헌재의 결정을 감안해 가산점 범위를 득점의 5% 범위에서 2%로 줄이고 가산점을 받아 합격하는 인원도 선발 예정 인원의 20%로 제한하는 개정안을 발의해 재논의된 것이다.

이 논란은 개인적으로 큰 손실인 군복무를 국가·사회가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로 초점이 모아진다.

찬성 측에선 20대 초반 가장 중요한 시기에 2년가량을 군대에서 보내는 남자의 입장에선 군 면제자나 여성에 비해 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가가 부여한 의무를 수행하면서 생기는 불이익을 국가가 보상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성·장애인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위헌 결정이 난 법안을 다시 입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군 가산점 부활에 동의한 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2% 이내의 가산점이면 시험 합격자의 10%가 바뀌게 되는데, 이는 군대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청와대도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네티즌들 간에도 찬반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군필자에게 혜택을 주더라도 호봉 인정 등 다른 방법으로 줘야지 취직시험의 가산점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주장과, 남자든 여자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