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4시(현지시간) 미 뉴저지주 저지시티에 있는 세인트 피터스대의 농구경기장인 야니텔리 센터.3000여명의 군중이 가득하다.농구장 밖에도 15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다.자리가 좁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다.이들은 손에 '변화(change)'라는 피켓을 들고 틈만 나면 "오바마"를 외친다.

'검은 돌풍'의 주역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여전히 열정적이다.전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패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나의 목은 쉬었다.눈도 침침하고 등도 뻐근하다.그렇지만 정신은 여전히 맑고 강하다.나는 미국의 변화를 이끌 준비가 돼 있다"며 "여러분도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묻는 대목에서 군중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든다.46세인 흑인 대통령 후보의 흡인력에 군중들 모두가 취해 버렸다.

유세장에서 만난 존씨(41)는 "오바마 지지자가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나왔는데 연설을 듣고 지지하기로 마음을 돌렸다"고 말했다.왜냐고 물었더니 "그저 눈물로 호소하는 힐러리와는 분명 달랐다"고 떠들어 댔다.모두가 그랬다.무엇에 홀린 듯 오바마의 마력에 빠져 있었다.

유세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주차장에 만난 한 흑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자신을 흑인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고 털어놨다.내용인즉 이랬다.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흑인 대통령'으로 유명하다.흑인들과 친하게 지냈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한 덕분이다.그래서 각종 흑인단체와 흑인 지도자들은 작년 일찌감치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다.그런데 같은 흑인인 오바마가 돌풍을 몰고 왔으니 고민이 아닐 수 없다.정서적으론 오바마와 가까운데 그렇다고 의리를 저버리기도 힘들다는 게 흑인지도자들의 고민이다.

미 대선열기가 뜨겁다.오바마가 몰고온 '검은 돌풍'에 힐러리는 '힐러리의 눈물'로 맞섰다.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눈물을 흘려 이젠 '클린턴 부부의 눈물'도 화제다.'돌풍'과 '눈물'의 대결이 치열해질수록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에 시달리는 흑인 유권자들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