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미래다] (7) 싱가포르 대학의 경쟁력‥세계 석학들의 요람으로

1994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 석·박사학위를 받고 홍콩과학기술대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던 한진경 교수(40)는 2001년 싱가포르경영대학(SMU)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 대학 순위 60위에 랭크될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홍콩과학기술대를 떠나 앞날이 불투명한 신생 SMU로 이직을 감행한 것. 한 교수가 이처럼 '모험'을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싱가포르 대학들의 교수에 대한 지원과 연구환경 등이 미국 등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대학들은 아시아 대학 중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찍이 영·미식 교육제도를 도입해 커리큘럼에서부터 학교 운영 방식까지 철저히 외국 유명 대학들을 벤치마킹했다. 싱가포르 대학들이 이처럼 교수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훌륭한 선생님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좀 더 우수한 인재들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교수들에 대한 연구 지원이다.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싱가포르 대학들은 교수들이 자신의 시간을 연구에 할애할 수 있도록 수업과 행정업무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MU의 경우 부임 후 3년차까지는 1년에 3과목,4년차부터는 4과목 정도의 수업 할당량만 채우면 된다.

부족한 수업량은 강의만 전문으로 하는 교수를 채용해 해소하고 있다. 강의 전문 교수의 경우 연간 6과목 정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연구 실적이 아닌 수업 내용 위주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연구-강의-행정을 모두 잘해야 출세한다는 교수 사회의 은어)'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교수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한 교수는 "교수들에게 1년에 세 번 정도 해외 컨퍼런스나 학회 발표 등에 참석하도록 학교 측이 지원한다"면서 "최근 외국에서 공부한 박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외국 대학에서 자리를 잡으려는 이유도 이러한 연구 지원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교수들의 몸값이나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등에 있어서도 싱가포르와 한국은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대부분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는 데 반해 싱가포르 대학들은 철저히 연봉제를 택하고 있다. SMU는 미국 유명 대학들의 연봉과 연동해 교수들의 몸값을 정하고 있으며 학장 등 시니어급은 3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인재가 미래다] (7) 싱가포르 대학의 경쟁력‥세계 석학들의 요람으로

인시아드(INSEAD)의 경우 경영전문대학원(MBA)답게 교수가 기업체에 대한 강연 프로젝트를 따내면 그에 해당하는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현재 인시아드는 삼성전자 LG전자 노키아 셸 엑손 등을 상대로 직원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교수에게는 4800유로(약 620만원)를,강의를 담당하는 교수에게는 3시간에 1600유로(약 210만원)를 지급한다.

싱가포르 대학들은 연구 중심 교수들에게는 테뉴어 심사를 받을 때까지 행정에 관한 업무를 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또한 한 학기에만 수업을 몰아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하다. 인시아드는 일반 학위 과정 이외에 최고경영자과정(Executive MBA) 등도 교수들의 할당 강의 시간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다.

수업 역시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토픽 한 가지만 가르치게 해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선진적인 시스템에 높은 몸값을 보장해 준다는 이점이 더해지며 실력 있는 외국 교수들의 싱가포르행은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인시아드에서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는 남명우 교수(37)는 "우리나라가 연구 논문 개수 등 수량적인 것에 치중해 대학 평가나 테뉴어 심사 등을 하는 데 반해 이곳은 같은 SSCI(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 논문이라도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나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 등 A급 학술지에 실렸는지 여부를 더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대학들은 최근 신임 교수들의 연구 실적에 대한 요구사항은 많아졌으나 그에 비해 연구 여건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면서 "예전에는 한국 사회에서 교수를 하면 안정적이라는 메리트라도 있었으나 지금은 이러한 점까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젊은 해외 박사들이 굳이 고국에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진경 교수는 "SMU에 지원하는 경영학과 교수들은 대부분 미국 상위 대학에도 지원할 만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면서 "이처럼 우수한 교수들이 아시아 시장에 대한 매력과 높은 연봉,선진화된 시스템 등에 이끌려 싱가포르 대학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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