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떨려요.

안 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그 자리에 서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요."

오는 21일 오후 6시30분 박세리(30·CJ)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칼튼호텔에서 미국 LPGA투어 명예의 전당 입회식을 갖는다.

한국선수는 물론 아시아 골퍼로서도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미국 LPGA 관계자를 비롯해 아니카 소렌스탐,캐리 웹 등 역대 명예의 전당 멤버와 미국 투어 선수들이 자리를 같이 한다.

오직 박세리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전화를 통해 전해오는 박세리의 목소리는 다소 상기된 듯 가늘게 떨렸다.

그는 "입회식 준비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스피치(speech)할 때 울지 말고 또박또박 연설을 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부모님과 그동안 저를 아껴주셨던 많은 분들이 떠오를 것 같아요.

저 혼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덧붙였다.

박세리는 11월12일에는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 오거스틴에서 세계 명예의 전당 입회식도 갖는다.

이때는 커티스 스트레인지,휴버트 그린 등 5명과 함께 입회식을 치러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세계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박세리의 심경을 이메일 및 전화로 들어봤다.

―명예의 전당 입회를 축하합니다. 소감은.

"큰 꿈을 가지고 처음 미국 LPGA 무대에 섰을 때가 생각나요.

그저 앞만 바라보고 겁없이 나아갔던 시절이었죠.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어요.

10년 전 세웠던 목표 중 하나인 명예의 전당 입회를 달성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벅찹니다.

중간에 슬럼프 기간도 있었지만 모두 지금의 목표를 이루게 해준 소중한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간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투어에 데뷔한 1998년 메이저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US여자오픈에선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우승해 투어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지요.

지난해 슬럼프를 딛고 맥도날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도 잊을 수 없어요.

오랜 기간 우승이 없었기에 그 기쁨이 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골프란 무엇인가요.

"인생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골프를 통해서 인생을 보고 배운다고 할까요.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고 그러다 슬럼프를 겪고 다시 이겨내고.이러한 요소가 더욱 더 골프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선수생활을 하면 할수록 삶에서도 성숙해지는 것 아닌가 해요.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는 없지만 선수생활이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골프와 관련된 일을 하며 골프의 맛을 느껴볼 생각입니다."

―슬럼프를 겪고 이겨내면서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당시는 골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시기였습니다.

항상 골프만 생각하고 골프만 해온 저에게는 슬럼프가 너무 힘들게만 느껴졌어요.

골프를 한동안 잊고 다른 것을 경험해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러 가지 운동들을 해봤습니다.

특히 킥복싱을 배웠더니 재미있더라고요.

올 시즌이 끝나면 다시 할 거예요.

스노보드를 배우면서 나만의 시간도 많이 가졌어요.

이런 가운데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훈련에 임했지요.

그랬더니 조금씩 컨디션이 회복됐고 스윙에 대한 자신감도 붙더라고요."

―선수생활은 언제까지 할 건가요.

"사람 일이 계획을 한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략 10년쯤 후에는 다른 위치에서 활동을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으로 언제쯤 은퇴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은퇴 후 계획은 세웠습니까.

"아카데미 운영과 학업(스포츠외교) 등 두 가지에 관련한 직업을 갖고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자친구는 있나요.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는 있습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데 미국 프로야구에서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어요.

결혼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요.

과거에는 외모에 많이 끌렸던 것 같은데 요즘은 듬직하고 제 생활을 이해해주는 남자가 좋습니다."

―미국 LPGA투어에서 최고의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현재로서는 로레나 오초아 선수를 꼽고 싶습니다.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오초아 둘 다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아주 좋은 경기를 합니다.

소렌스탐은 안정된 플레이가 강점이라면 오초아는 파워풀하면서도 정교한 플레이가 돋보입니다."

―너무 많은 한국선수들이 미국 투어에 가 있지 않나요.

"결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 무대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의 도전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라운드 후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합니까. 술은 얼마나 마시나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리고 동료 후배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요.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술자리에서 얘기 나누는 것은 좋아합니다."

―투어생활 중 언제 가장 힘든가요.

"플레이가 잘 되지 않을 때입니다.

플레이가 잘 되지 않아 힘들어하다 보면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고요."

―휴식 시간에는 무엇을 합니까.

"요즘 한국 오락프로를 보는 것이 낙이에요.

'무한도전' '웃찾사' '개그야' '개그 콘서트' 등을 보면서 그냥 편안하게 스트레스를 풀곤 해요.

유재석,MC몽,공유 등 좋아하는 연예인이 너무 많아요."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요리도 하나요.

"닭볶음탕,잡채,장떡,떡갈비 같은 음식을 좋아해요.

가끔은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파스타 종류도 먹고요.

요리하는 것도 즐기지만 자주 하지는 못합니다."

―종교가 불교인 것으로 압니다. 전에 최경주 프로와 식사할 때 최 프로가 교회 다니라고 전도를 했다고 하던데.

"최 프로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예요.

최 프로님 입장에서 해주신 말씀은 그만큼 저를 생각해 주신다는 의미로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들이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가장 신경써야 합니까.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연습을 많이 하라는 얘기는 자기만의 스윙에 대한 원리를 갖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스윙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스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하체가 무너지지 말아야 하고 스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톰 크리비 코치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고 있는데.

"스윙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하체 움직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지도받고 있습니다.

하체가 지나치게 많이 움직이면 스윙의 일관성을 떨어뜨리고,그러면서 자신감 결여로 스윙이 망가진다는 지적을 많이 해줍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코스는.

"캘리포니아주 팜 데저트에 있는 빅혼 골프코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PGA에 비해서 LPGA대회가 열리는 골프장들은 생각보다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

빅혼 골프장은 경치도 아름답고 관리 상태가 아주 좋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골프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않나요.

"조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골프를 할 것입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약력=△1977년 9월28일생 △1996년 프로 입문 △통산 우승 횟수 32승(국내 8승,미국 24승) △메이저대회 5승 △2003년 미국 LPGA투어 베어트로피(평균 최소타) 수상 △2004년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 충족 △2007년 세계 명예의 전당 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