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

백년손님 또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은 한평생을 두고 늘 어려운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으로,'사위'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귀한 손님인 사위가 오는 날이면 장모는 씨암탉을 잡는다.

먹거리가 넉넉지 않았던 그 옛날 씨암탉은 집안의 소중한 재산이었다.

그만큼 장모로서는 사위에게 지극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이 '씨암탉'은 읽을 때 누구나 [씨암탁]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표준발음법에서도 겹받침 'ㄺ'은 어말이나 자음 앞에서 ㄱ으로 발음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말이 모음으로 연결되면 사람에 따라 발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씨암타글]이라고 하고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씨암탈글]이라고 읽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경우는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발음하는 [씨암타글]은 옳은 게 아니고 적게 쓰는 [씨암탈글]이 표준이다.

모음으로 연결될 때는 겹받침 'ㄺ'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본래의 발음이 살아나오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나한테 떨어지는 몫은 얼마야?" "자장면 한 그릇 값이면 충분해." 이런 대화에 나오는 '몫은' '값이면'도 읽는 이에 따라 [목은/목슨] [가비면/갑씨면]으로 달리 발음된다.

이 역시 모음으로 연결될 때는 표기에 있는 받침이 모두 실현돼 [목슨] [갑씨면]이라 읽어야 한다.

표준발음법에서는 "겹받침 'ㄺ,ㄻ,ㄿ'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 [ㄱ,ㅁ,ㅂ]으로 발음한다"고 정하고 있다.

'닭,흙,삶,읊다' 같은 단어는 읽을 때 [닥,흑,삼,읍따]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몫이나 값에 보이는 'ㄳ' 'ㅄ'도 마찬가지다.

또 "그 겹받침이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나 어미,접미사와 결합하는 경우에는,겹받침의 뒤엣것만을 뒤 음절 첫 소리로 옮겨 발음한다"고 돼 있다.

복잡하게 설명돼 있는 것 같지만 한 가지만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겹받침의 말이 모음으로 이어질 때는 자연스럽게 겹받침의 뒤엣것이 흘러내려 발음된다는 것이다.

가령 맑아[말가],앉아[안자]나 젊어[절머],읊어[을퍼] 같은 것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모국어 화자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읽으면 표기 그대로의 본음이 살아나오는데,그것이 곧 표준발음이다.

그런데 유난히 '통닭을,씨암탉을,값을,까닭없이,흙을' 같은 말에선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 같다.

이를 [통다글,씨암타글,가블,까다겁씨,흐글]식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아마도 단독으로 읽을 때의 발음인 [통닥,씨암탁,갑,까닥,흑]에 이끌려 모음 조사나 어미가 올 때도 똑같이 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표준말 '흙,닭'이 서울 토박이들 사이에선 [흐기(흑+이),흐글(흑+을),흐기다(흑+이다)]와 [다기(닥+이),다글(닥+을),다기라(닥+이라)] 등으로 실현돼 표준발음인 [흘기,흘글,흘기라]와 [달기,달글,달기라] 등과 매우 다르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김주필 국민대 교수) 하지만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아직 이들은 표준발음이 아니라 서울방언에 지나지 않는다.

규범은 '일반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의 예를 들어 예외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속성이 있다.

'삶'을 단독으로 읽을 때는 [삼]이지만 '삶에 지친'이라 할 때는 [사메 지친]이 아니라 [살메 지친]이 되듯이,[다글,씨암타글,가블,까다겁씨,흐글]로 발음할 게 아니라 받침이 뒤 모음에 흘러내린 [달글,씨암탈글,갑쓸,까달겁씨,흘글]로 읽어야 한다.

이쯤 되면 일부 '값어치'의 발음에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누구나 [가버치]로 읽는다.

하지만 '-어치'는 접미사로,실질형태소가 아니므로 지금까지의 방식을 적용하면 [갑써치]로 발음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에 대해 '-어치'는 접미사로 분류되긴 하지만 명사와의 경계선 상에 있는,특이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어치'에 관해선 독립적인 실사로 인식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가버치]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