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범여권 주자들은 너나없이 "이 후보 대항마는 바로 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검증과 차별화라는 명목을 붙여 이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에 나선 것이다.

마치 이 후보 '흠집내기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손학규 후보 측은 이 후보를 '낡고 부패한 후보''토목건설 경제대통령'이라고 깎아내렸다.

정동영 후보는 '어제의 전과자,오늘의 거짓말쟁이,내일의 범법자'라고 공격했다.

한명숙 후보는 "누구도 해서는 안될 위장전입,위증교사,주가조작,부동산 투기,재산은닉 의혹 등 온갖 범죄와 악행을 저질러왔다"고 힐난했다.

천정배 후보도 "선거법 위반 등 법 위반 전력,천박한 언행,토건국가식 성장모델 등을 볼 때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이 후보를 폄하했다.

이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별러온 터라 이 같은 공격은 이미 예고돼왔다.

게다가 자신의 지지율 제고를 위해 유력주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정치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데 불과하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범여권이 보여준 저급한 정치행태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이 후보가 당선된 날 범여권은 "당선을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인사치레마저 생략했다.

그들이 얘기하는 검증은 남은 4개월로 충분한데도 단 하루를 기다릴 여유마저 없없다는 얘기다.

"너무 야박하다"는 자조가 범여권 일각에서조차 나오는 이유다.

신당을 서둘러 만들고 대선주자들이 경선을 시작해도 뜨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범여권의 이런 행태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다.

백년정당을 기치로 내걸었던 열린우리당이 '싸가지'라는 말을 남긴 채 3년9개월 만에 간판을 내린 이유를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내가 대항마'라는 합창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는 것은 범여권 주자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50%대를 돌파한 이 후보 지지율의 절반도 안 된다는 단순한 수치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민심의 현주소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안이한 자세가 근본적인 이유다.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