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터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은 지난달 22일 실시된 총선에서 47%의 지지율을 얻어 승리했다.

AKP를 이끄는 레제프 타이프 에드로안 총리는 2003년 첫 집권 때부터 표명해온 세속주의 정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종교와 분리된 세속주의 정치체제를 지켜왔다. 하지만 재집권하는 AKP가 진정한 세속주의 정당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까.

정의개발당이 이끈 지난 5년간 터키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외국인 투자가 급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003년 10억달러에 불과했던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는 2006년 200억달러로 늘었다. AKP는 국영 기업을 사유화하는 등 친기업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정의개발당은 적어도 경제적으론 서구사회처럼 세속주의를 추구한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속주의에 반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들의 집권 전만 해도 터키는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친미적인 국가로 꼽혔지만 지금은 다르다. 퓨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우호 감정을 가진 터키인은 단 9%에 불과했다. 미국을 싫어하는 터키인의 비율은 팔레스타인보다도 높아졌다. 중동과 인근 지역에서 터키처럼 갑작스럽게 친미주의에서 반미주의로 전환된 곳은 찾기 어렵다.

AKP는 지난 몇 년간 반(反) 서구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해온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04년 11월 터키 의회에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어 사용도가 낮고 국제적인 언론 환경이 발전하지 않은 점도 서구 사회에 대한 터키인의 반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의개발당은 구체적인 정책에서 서구 국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터키는 AKP 집권 전부터 이스라엘과 긴밀한 군사 동맹 관계를 맺어왔다. 양국의 공동 군사 작전에 터키가 들인 비용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총 33억달러에 달했다. 이 같은 관계를 통해 터키는 최첨단 무기를 제공받고 쿠르드노동자당(PKK)의 테러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같은 분야에 터키는 단 2억4500만달러를 투입했다.

이 같은 정의개발당의 태도는 시리아 기독교인에 대한 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1990년대 PKK에 의해 시리아에서 쫓겨난 기독교인에게 터키 당국은 여러가지 편의를 봐줬다. 하지만 정의개발당이 임명한 새로운 각료들은 크리스천에 부정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최근 터키 남동부 미드야트의 시리아 교회 수도원을 방문한 지역 통치자는 '나는 무슬림이다'라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비종교적인 세속국가에서는 거의 듣기 힘든 말이다.

자본주의 발전이 정당이나 국가를 서구적으로,또는 세속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AKP가 이끄는 터키가 세속주의에 반하는 정치적 시도와 반미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 다음 5년은 터키가 내세운 세속주의적 발전을 입증할 좋은 기회다.

정리=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이 글은 미국 워싱턴연구소(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의 소네르 카갑타이 수석 연구원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세속주의적 터키?(Liberal Turkey?)'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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