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鄭 潤 基 패션 스타일리스트 intrend07@yahoo.co.kr >

세상을 살면서 맺어지는 여러 관계 중에서도 '친구'는 참으로 특별하다.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닌데 애잔한 마음이 들고,이익 관계로 맺어진 것도 아닌데 무슨 일만 있으면 생각이 나니 말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제각각 먹고 살기에 바쁜 삼십대를 살다 보니 예전처럼 친구들과 마주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연례행사가 됐다. 옛 친구에게 전화 한통 걸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 매스컴에 얼굴을 내비치고 있는 나를 반가워하는 친구들로부터 한두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음성조차 낯선 그 친구에게서 이름을 전해듣고 대화를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어제 만나 못다 나눈 얘기를 풀어내는 친구처럼 수다를 떤다.

이런 것이 친구인가? 일을 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잠깐 멀어지면 서먹해지기 십상인데 '친구'란 인연은 오랜 시간 공백기를 가져도 금세 다정한 친구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게 전화통화로 의기투합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약속 시간을 잡아 여지껏 어떻게 안보고 살았냐 싶게 급만남을 가졌다. 겉모습은 변해 있었지만 추억을 공유하며 대화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학창시절 장난꾸러기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일정은 미뤄두고 예전에 같이 어울리던 인천항을 찾아 차를 달릴 수 있는 무모함도 친구들끼리만 도모할 수 있는 모험이 아닐까.

그렇게 서로 살아가는 얘기도 하고 든든한 내편을 만든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오래된 옛 친구와의 만남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피로회복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만남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첫사랑과 첫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목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은 참으로 단순한 동물인 것 같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오래 전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고 반가운 마음에 잠깐 만나 회포를 푼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친구'라는 특별한 관계가 주는 위력일 것이다. 누구든 오랜만에 만난다고 이런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는 잠시 접어두고 기억 속에 숨겨 두었던 친구들을 꺼내어 전화 한통 걸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세상사에 치여 힘이 빠진 친구에게 큰 위로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친구들을 기억하고,그리워하고 있음을 알려줄 것이다. 예전의 기억만을 함께 추억할 것이 아니라,지금을 같이 추억으로 담아갈 수 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친구가 있어 좋다는 것을 일깨워준 내 친구,정말 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