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희 에스원 사장(60)은 삼성그룹에서 손꼽히는 '인사통'이다.

33년의 월급쟁이 생활 중 27년을 '사람을 뽑고,키우고,자르는 일'에 매달렸다.

성과주의와 능력주의로 대표되는 삼성그룹의 '신(新)인사시스템'을 만들고 외환위기 때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차가운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가슴 뭉클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로맨티스트'였다.

백호 임제의 시조를 읊으며 사랑을 논하고, 통도사에서 고시공부하던 시절 한밤 중에 들려오는 '로망스' 기타 연주에 눈물을 흘렸던 추억을 떠올리며 술잔을 꺾을 줄 안다.

동서고금의 역사와 종교,철학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은 또 언제 쌓았을까.

오는 8월 회갑을 맞는 이 사장과의 인터뷰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한경 기자들과 솔직토크

#'인사통' 외길 인생

-제일제당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셨는데요.

"우리 어릴 적에는 설탕은 아주 중요한 때 아니면 못 먹었지요. 마침 우리 집이 제일제당 부산공장 옆에 있었거든.그런데 명절 때만 되면 제일제당 직원들이 그 귀한 10㎏짜리 설탕 포대를 어깨에 메고 폼 잡고 걸어나와요. 명절 선물로 받은거죠.그게 그렇게 부럽더라고.그래서 제당에 입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첫 보직은 뭐였나요.

"인사였어요. 처음 입사하니까 선배들이 인사 파트에 있으면 '과장 달고나면 할 게 없다'(승진 못 한다)고 하는 거야.당시엔 지금처럼 인사과가 독립부서가 아니고 관리부 총무과 소속이었거든.그래서 1년간 상사한테 '영업부서로 보내달라'고 투쟁했죠.그렇게 영업부서로 갔는데 결국 1년6개월 만에 다시 인사로 되돌아왔어요."

-영업에 소질이 없으셨나봐요.

"그렇지 않아요. 장사를 꽤 잘했지.설탕 조미료 같은 거 많이 팔았어요."

-직장 생활 20년 만에 친정을 등지고 삼성전자로 옮긴 사연이 있습니까.

"제당에서 필요없으니까 전자로 가라고 해서 왔지요.(좌중 웃음)"

# 성공의 비결 "상사에게 반해라"

-7년째 CEO를 맡고 계신데,성공의 비결이 있나요.

"직장생활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란 게 있을 수 없지만 굳이 들자면 딱 하나 있어요. 상사한테 반하라는 겁니다. 상사에게 아부하고 맹종하라는 게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벌써 일하는 자세가 달라져요. 그런데 많은 직장인들이 상사한테 반하기보다 상사의 약점을 비판합니다. 그러면 일하는 데 무슨 신이 나겠어요."

-반한다는 게 결국 짝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잖아요.

"그럴수도 있죠.그런데 사람에게는 보디랭귀지란 게 있어요. 그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느껴지거든.가식적으로 '저 사람을 좋아해야겠다'고 하는 건 한두 번은 보여줄 수 있지만 꾸준히 보일 수는 없죠.물론 반할 만한 상사를 만나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러기는 힘들지.아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회장(이건희 회장)처럼 반하기 쉬운 사람 밑에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스스로는 반할 만한 상사라고 생각하세요.

"별로 안 그런것 같아요. (좌중 웃음) 내 밑의 직원들도 모두가 나한테 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장인이 상사에게 반하지 않으면 1차적으로는 개인이 손해고 2차적으로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이 손해를 봐요."

-아랫사람이 반하는 것과 아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쉽지는 않죠.그런데 30년 사람 다루는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 구별이 안 되겠어요? 오래 접촉하다보면 말투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죠."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신입사원 100명을 채용하면 몇% 정도 제대로 뽑았다고 생각되나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100% 전부라고 하면 세상살이 어려운 게 하나도 없겠죠.대개 면접을 하다보면 누가 봐도 특출난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사람은 20% 정도밖에 안 돼요. 나머지 80%는 뽑고나서 계속 관찰하면 서서히 우열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신입사원들의 능력은 별 차이가 안 납니다. 어떤 자세를 갖고 일하느냐에 따라 10년 후 모습이 달라져요."

-삼성은 면접 때 관상까지 본다는데 사실입니까.

"1957년에 처음 공채를 시작한 이래 매년 입사경쟁률이 10 대 1은 넘습니다. 지금까지 삼성에 지원한 사람이 수백만명은 될 겁니다. 그런데 수많은 관상가 중에서 삼성 신입사원 면접에 동원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리고 면접에서의 당락은 면접장에 들어온 뒤 30초 내에 80%가 결정납니다. 관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보디랭귀지를 보는거지."

-'존경하는 인물'을 아버지라고 답하면 무조건 뽑는다고 하던데요.

"그건 아닙니다. 면접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보는 것은 인생관을 알아보려는 겁니다.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말을 만들어내면 다 보여요. 진솔한 자세와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게 면접에서 가장 중요해요."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시죠.

"싱가포르의 전 총리인 리콴유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한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는 기업으로 보내고 그 다음 인재는 학교로 보내고,세 번째 인재는 공무원으로 보내라고.왜냐하면 기업은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인재를 보내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삼성의 인사를 말하다

-인사팀장 시절 얘기 좀 해주시죠.

"처음 인사에 배치됐을 때 상사들이 '인사는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난 아랫사람들에게 '인사는 빨라야 한다'고 했어요. 혁신의 최선봉에 인사가 서야 한다고 했지.그래서 1999년에 삼성전자 인사팀장으로 부임했을 때 슬로건을 '일을 빨리 하자'로 정했어요. 밑에서는 팀의 체면도 있으니까 '업무처리의 신속화'로 하자더라고.그런데 슬로건은 쉽고 간결해야잖아요. 역대 정부의 슬로건 중 가장 뛰어난 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건 '100억달러 수출 1000달러 소득'입니다. 얼마나 간결해요."

-청탁도 많이 받았겠어요.

"청탁은 대부분 정상적으로는 입사하기 힘들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청탁이 들어오면 '됩니다,안 됩니다'라고 보고하기 전에 '청탁을 받아들이면 이런 장·단점이 있다'는 리포트를 써서 올립니다. 그러면 위에서 '알았다' 한마디만 해요. 그걸로 끝입니다."

-인사팀장 때 많은 걸 바꾸셨죠.

"그 때 개발했던 '신인사시스템'이 지금도 삼성 인사의 기본 틀로 유지되고 있지.지금도 그 당시 만든 인사시스템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때는 기자들에게 인기 좋았어요. 능력주의·성과주의 인사제도 등을 실시할 때라 기삿거리가 많았거든."

#화가를 꿈꿨던 어린 시절

-아버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기업체 다니셨어요. 좀 우스운 얘기지만 호남을 가보면 지평선이 보일 만큼 논밭이 넓은데 경남 쪽은 심심산골이에요. 논밭이 별로 없으니까 가령 열 마지기 땅을 갖고 있어도 세 아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세 명 다 굶어죽지.조각땅은 쓸모가 없어지는 탓이지.그래서 장남에게만 물려주면 나머지 아들들은 죽든 살든 밖(외지)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어릴적 꿈은 뭐였나요.

"어릴 때는 그림 그리는 걸 꽤 좋아했습니다.학교 선생님에게서 미술반에 들어오라는 권유도 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림을 잘 그렸나봅니다.

"어릴 때 잘 그려봤자 얼마나 잘 그렸겠어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걸 알고는) 아버지께서 엄청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6남매의 장남이 동생들 거두고 해야 하는데 '환쟁이' 해서 어떻게 돈버느냐고 말이에요. 그때는 이중섭 같은 유명한 화가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법대를 가셨나요.

"고교 시절에는 고고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그런데 그것 역시 밥벌이 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6남매의 장남이란 짐이 무거웠겠습니다.

"힘들었죠.지금처럼 여유가 있으면 6남매가 아니라 10남매의 장남이어도 상관없겠지만 그때는 못살았으니까요. 옛날에는 동네 양조장에서 '술지게미'를 사다가 끓여먹곤 했잖아요. 우리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점심은 거의 국수로 때웠지요. 또 식은밥 같은 걸 죄다 집어넣어서 죽을 끓여 먹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도 죽은 잘 안 먹어요."

#시를 좋아했던 로맨티스트

-부인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집사람을 처음 만났죠.처음 보는 순간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헌시(獻詩)를 많이 읊어줬죠."

-왜 시를 읊었나요.

"그때는 지금처럼 문자메시지를 날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편지를 많이 썼는데 그러려면 좋은 시를 많아 알아야 했지요. 릴케나 바이런의 시를 원문 그대로 적기도 하고,폼 잡으려고 시집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요."

-지금도 외우는 시가 있습니까.

"그때는 수백 편 외울 수 있었고 지금도 시조 몇 개는 외웁니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재미있는 연애시들이 몇 개 있어요. 백호 임제 같은 이는 유명한 로맨티스트였지요. 임제가 평안도 감사로 발령받아 평양으로 가는 길에 황진이 무덤 앞에서 시 한 수를 읊습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을 어듸두고 백골만 무쳤난이….' 그런데 명색이 사대부가 기생 무덤 앞에서 시를 읊으니까 평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잘린거라.임제와 장안의 유명한 기생인 한우(寒雨)와의 연애담도 유명하죠.어느 비오는 겨울날 임제가 한우를 찾아가서 시조 한 수를 읊어요. '북천이 맑다거늘 우장없이 길을 난이 산에는 눈이로고 들에는 찬비로다….' 그러니까 한우가 '어이 얼어자리 므스일 얼어자리.원앙침 비취금 어디두고 얼어자리…'라고 화답하지요. '한우'라는 이름을 절묘하게 이용한 거죠."

-이성에게 인기가 많으셨겠어요.

"연애를 잘 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시나 기억하고 참."(좌중 웃음)

-스스로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기질은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때 기타가 유행했는데 로망스라는 곡이 참 좋았지요. 한번은 고시공부하러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있는데 밤중에 갑자기 로망스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걸 듣고 있으니 눈물이 핑 돌더군요."

-역사서적도 많이 읽으시나요.

"역사 논쟁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아들한테는 인생을 정말로 잘 사는 법을 배우려면 역사서적을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제일 먼저 삼국지로 시작해서 열국지를 읽고,그 다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담은 '대망'을 읽으라고 합니다. 그런 책 속에 처세와 인생의 교훈이 있거든요."

-그런 교훈을 경영에도 접목하십니까.

"직원들 정신교육을 할 때 많이 씁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

-사모님과 여행은 자주 다니세요.

"자주 다닙니다. 제 동기들한테 이런 얘기를 자주 해요. '남자가 나이 50이 넘으면 마누라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안 되고 눈을 목덜미 쪽으로 낮추라고.' 존경한다는 표현을 하라는 겁니다. 저도 젊을 적에는 경상도 사나이 기질이 있어서 큰소리 뻥뻥 치곤 했는데 나이 들어서 그렇게 하면 이혼당합니다. (좌중 웃음) 나이들수록 배우자를 존경할 줄 알아야 해요."

-아들들을 키우면서 매를 든 적은 없었습니까.

"애들 키울 때 거의 간섭을 안 했어요. 첫째 아들은 크면서 좀 방황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멱살이라도 잡아서 다그칠까 생각도 들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군대 다녀와서는 제자리를 찾더라고요. 사실 내가 아버지로서 좋은 표상이 못 되지만 우리 애들은 나를 좋아해요.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려줬다는 것 때문이죠."

-막내 아들이 미술을 전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조소를 합니다. 올해 9월에 졸업해요. 내가 어릴 적 그림 그리고 싶었을 때는 아버지께서 말렸는데,아들에게는 '너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듭디다. '아,쟤도 지 밥벌이 하기는 쉽지 않겠다고.'(좌중 웃음)."

#은퇴 이후엔 그림을…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뭣한데,이건희 회장과 정말 닮으셨습니다.

"그런 말을 간혹 듣는데 별로 안 닮았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사우나를 자주 해요. 젊을 적엔 (스트레스 풀려고) 술을 많이 마셨는데 별 소용이 없더라고요. 우리 직원들에게도 얘기하는데 자기 나름대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해요."

-지금도 그림 좋아하세요.

"좋아는하는데 그릴 시간은 없습니다.바빠서요."

-미술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나중에 은퇴하면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워볼 생각입니다.나이 들어서 뭔가 몰두할 만한 일이 있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정리=이태명/사진=강은구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