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가치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한다.

협력과 경쟁이라는 두 용어를 합성한 '코피티션(copetition)'이라는 말까지 등장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쟁과 담합은 양립할 수 없다.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해치는 담합은 법적 제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담합과 협력의 경계선은 얼마나 명확한 것인가.

요즘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니언시(leniency) 제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관용을 의미하는 리니언시는 담합을 자진신고하는 업체에 공정위가 과징금 면제 등의 혜택을 베푸는 제도다.

이 덕분에 밀가루업체 세제업체 손해보험사 유화업체 건설사 등에 이어 얼마 전에는 설탕업체들이 담합으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얻어맞았다.

지금은 일부 생보사가 공정위의 리니언시를 수용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업계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소식이다.

관련업계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배신'을 유도하는 이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공정위의 주장은 한결같다.

담합에는 매우 지능적 수법들이 동원되기 때문에 업계 내부의 누군가가 자진신고나 조사협조를 해 주지 않으면 혐의 입증이 아주 어렵다는 얘기다.

덧붙여 이렇게 해서 담합이 자꾸 적발되다 보면 누가 신고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모두가 갖게 될 것이고,결국 담합은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게임에 비유하면 그 누구도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공정위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와 똑 같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유럽연합에서 유사한 제도들을 운용 중이라는 점을 근거로 이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렇듯 편리함이 있으면 그에 따른 대가도 있게 마련이다.

당장 담합을 사실상 주도했거나 이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업체가 오히려 이 제도를 교묘하게 활용,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면제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공정위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제도를 보완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제도를 보완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공정위가 이 제도를 마냥 즐기고 있기에는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체 사이의 불신 심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범죄를 놓고 신뢰문제를 제기할 수 있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의도는 전혀 없다.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불신이 업계에 고착화될 경우 가치 있다고 여기는 선의의 협력(제로섬이 아니라 플러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게임)마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담합과 협력의 경계선이 모호한 경우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기업은 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협력도 한다.

그리고 그 협력의 핵심적인 토대가 되는 것은 신뢰다.

목적 달성도 중요하지만 수단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공정위가 리니언시 제도를 남용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부작용도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