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척박한 한국 낙농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합원(목장주)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설립한 서울우유협동조합(이하 서울우유).지난 70년간 유(乳)업계 부동의 1위 자리에 안주,무사안일·적당주의가 팽배하던 서울우유의 보수적 조직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시장경쟁 원리에 익숙지 않았던 '협동조합'의 독주 행진은 남양유업,매일유업 등 후발 민간 기업들의 공격 경영에 직면했고 이는 내부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작년 9월 서울우유 이사회에서 처음으로 민간 전문경영인을 선출,과감한 경영 혁신에 나선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11일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서울우유가 시도하고 있는 고객 최우선,실적 제일주의,사업 다각화 등 시장경쟁 원리에 입각한 '실험'이 성공할지 주목되고 있다.


◆한국 우유의 대명사,성장동력을 잃다

70년 역사의 국내 최대 유업체 서울우유는 그 자체가 한국 유업계의 역사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나와 대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서울우유의 유리병 우유를 집어들던 기억은 1970~80년대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고객 정서에 착안해 내놓은 투명 페트 용기에 담은 '목장의 신선함이 살아있는 우유'는 하루 10만개,월 평균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1974년 선보인 커피우유(삼각포리머 커피우유)는 30,40대 주부들의 인기에 힘입어 한 달 900만개,연간 1억개 이상이 팔리며 한 해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아줌마들의 스타벅스'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2005년 9월9일에는 유업계 최초로 흰우유 전 품목에 1급 A우유를 출시,낙농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품질의 고급화를 달성했다.

글로벌 낙농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중국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중국 지린성 유업그룹과 10만달러의 기술용역 수출 계약을 체결,한국 낙농생산 기술을 중국에 전수하고 있다.

간간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긴 했지만 경쟁사에 비해 백색시유(흰색우유)에 편중된 사업구조는 저출산이라는 암초에 직면,표류하기 시작했다.

매출액의 90% 이상을 유제품 사업부문이 차지하는 서울우유의 매출은 최근 정체에 빠졌다.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에도 선수를 빼앗긴 상태다.

경쟁사인 매일·남양유업은 차음료,와인 판매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서며 두 자릿수 매출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동원F&B는 최근 해태유업을 인수,종합 식품회사로 거듭나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서울우유는 오로지 우유 관련 사업에만 집중해 최근 3년(2004~2006년)간 5%대의 매출 성장에 그치고 있다.

◆민간 전문경영인,구원투수로 등판

작년 9월 이사회에서 130명 대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출된 첫 민간 전문경영인인 이종석 서울우유 CEO(상임이사)는 취임 직후 대대적인 조직 개혁에 나섰다.

남해화학 전무,정밀화학업체인 휴켐스 대표이사를 지내 시장경쟁의 효율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상임이사는 서울우유가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비전과 경영이념이 필수적이라고 판단,내외부 토론 과정과 직원들이 공모한 비전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우유의 새로운 비전 'FOOD & Life Creator'를 탄생시켰다.

총 778개의 핵심 개혁 과제를 마련해 지난 2월부터 전 부문에서 실행에 들어갔다.

비전 제시와 함께 고객 최우선,성과 제일주의 등을 도입해 조직에 적당한 긴장과 신바람을 동시에 불어넣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유업계에서 고객을 등한시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화응답.요즘 서울우유 어느 부서에 전화를 걸어도 "신선한 우유,서울우유입니다"로 시작하는 응답을 들을 수 있다.

고객을 최우선시해 감동을 끌어내자는 내용의 고객만족 헌장도 만들었다.

서울우유 전 임직원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성과 제일주의'.이 상임이사는 올해 말 대대적인 시상식을 계획하고 있다.

전국 1200개 대리점에 근무하는 사원들 가운데 4명의 우수 직원을 뽑아 대리점 사장으로 승진시킨다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기로 한 것.이 밖에 자동차,유럽여행 등의 보너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스타벅스와 제휴,미투 상품 등 사업 다각화 성공

사업 다각화에도 적극적이다.

출산율 저하로 우유소비가 줄어들면서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치즈시장.지난 4월 100억원을 투자한 서울우유 거창 치즈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서 유럽풍 자연치즈 시장을 놓고 매일유업 등 민간 업체와 경쟁에 나섰다.

기존 유(乳) 관련 제품은 한 달에 한 개의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

신제품을 몇 개월에 하나씩 내놓던 '굼뜬' 서울우유로서는 엄청난 변화다.

지난 5월엔 세계적 커피 전문업체인 스타벅스와 손잡고 1000억원 규모의 컵커피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선보인 스타벅스 컵커피는 하루 7만개씩 팔려 나가고 있다.

현재 컵커피 시장은 매일유업의 '까페라떼'가 50%를 선점하고 있다.

이어 남양유업 '프렌치키스'가 30%대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우유는 올해 10%의 시장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달 중 출시할 '내가 좋아하는 하얀 바나나'는 매일유업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의 미투 상품이다.

좀체 미투 상품을 내놓지 않던 서울우유가 명분 대신 실리를 선택한 셈이다.

서울우유는 조만간 생수와 아이스크림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포화 상태인 지하 생수시장 대신 특정 장기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생수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운다는 전략이다.

서울우유는 이러한 비전 달성과 경영이념,핵심 가치를 통해 10년 후인 2017년에 매출액 3조원의 식품업계 1위,국내 100대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


<7월12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