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 정부가 아파트 임대료의 상한선을 정한 적이 있다.

공급은 제한돼 있는데 수요가 급증하면서 세입자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 판단은 금세 오류임이 드러났다.

임대업자들은 아파트 수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임대료에 상한선이 그어져 있으니 비가 새건,파이프가 터지건 관심을 가질 턱이 없었다.

동네가 슬럼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얼링 올센(Erling Olsen)이라는 학자가 뉴욕시의 정책실패를 숫자화시켰다.

아파트 임대료를 묶어놓은 결과 세입자들의 실질소득은 3.4% 증가한 반면 소유주들은 그 2배의 소득 감소를 경험해야 했다.

소유주들은 폐허가 된 아파트를 허물고 콘도나 상업시설로 전환시켰다.

어떤 지역의 아파트는 90가구에서 50가구로 줄었다.

반면 수요는 120가구로 늘었다.

새로운 아파트를 찾는 데 실패한 세입자들은 결국 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가격통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시장경제의 골간인 가격결정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흔들었을 때 얼마나 큰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인 사고 방식'으로 영세사업자에 대한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를 대폭 인하하라고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금융감독위원회가 추진해오던 신용카드 수수료 개선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초 13일로 예정됐던 공청회는 무기 연기됐고 이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던 재정경제부가 뛰어들어 수수료 원가분석에 대한 용역을 회계법인에 맡기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카드의 가맹점수수료도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정해지는 가격이다.

가맹점의 수익기여도나 매출건전성 등에 따라 가맹점 수수료 가격이 차등 적용되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도 영세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라는 것은 그냥 물건 값을 깎아주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카드사의 경영악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다른 가맹점들과 주주들만 덤터기를 쓸 판이다.

며칠 전 대부업법 시행령상 이자율 상한선이 66%에서 49%로 낮춰진 것도 마찬가지다.

저신용자들의 자금거래는 다시 암시장으로 빠져들 위기에 놓였다.

경제관료들마저 서민들에 대한 '선의'가 오히려 서민들을 벌주고 괴롭히게 될 것이라며 반대하던 일이다.

'가격'을 우습게 생각하는 '선의의 폭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이 일반노동자 최저임금의 70%를 받도록 법이 개정됐다.

관리비 인상 부담을 걱정한 주민들이 즉각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올 들어 전국 아파트 경비원의 10% 이상이 해고된 이유다.

1만명이 넘는 인력이다.

해고된 경비원은 자살하고,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뉴코아 사태도 따지고 보면 가격을 인위적으로 왜곡시킨 후유증이고,아파트 분양가상한제와 원가공개도 결국 주택공급을 위축시킬 가격통제다.

참여정부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선의'를 베풀지….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기에 더 없이 좋은 시기라는 게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