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Money] 투자은행이 뭐지?

"이제 증권맨이 아닌 인베스트먼트 뱅커(Investment Banker)로 불러주세요."

국내 증권회사들이 변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주식·채권투자자들의 매매과정에서 떼는 수수료를 주수입으로 삼던 증권회사들이 앞으로는 다양한 금융분야에 뛰어들어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처럼 세계 금융시장을 아우르는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증권회사들의 의지에 불을 댕긴 것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다. 이 법의 시행은 앞으로 국내 자본시장에는 일대 소용돌이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연 전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투자은행이란 무엇이며 자통법은 국내 금융사들의 투자은행화에 어떤 역할을 할까.

◆투자은행이란?

투자은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외국 증권산업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증권회사의 업무는 그 사업영역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위탁매매(Brokerage),자산관리(Asset Management),투자은행(Investment Bank)이 그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위탁매매 전문 증권사는 주로 개인투자자들의 돈을 위탁받아 매매 주문을 대행한다. 이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얻는다. 미국 1위의 위탁매매 업체인 찰스 슈왑이 대표적이다. 찰스 슈왑은 전체 사업부문 중 개인관련 부문 매출이 59%에 이른다.

자산관리 전문 금융사들은 개인과 기업,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계좌관리,투자관리,리서치 등의 업무를 한다. 얼라이언스 번스타인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관리자산규모는 6000억달러에 이른다.

투자은행들은 그럼 어떤 업무를 할까. 이들의 고객은 주로 기업이며 그 업무는 금융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고 있다. 기업의 상장(IPO),주식 대규모 매각(블록세일),채권 및 주식 발행 등을 주선하는 업무를 포함해 M&A나 기업구조조정,부동산 투자,리서치,시장조성 등을 맡아서 한다. 자산관리는 물론 대규모 자금을 이용해 직접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수익성과 외형,업계 영향력 면에서 위탁매매나 자산관리 전문 금융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투자은행이라고 부를 만한 증권사가 없다. 대부분 위탁매매에 치중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그 규모가 글로벌 투자은행에 비해 왜소하고 사업영역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국내 증권사 중 시가총액 기준으로 가장 큰 대우증권의 지난해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3735억원으로 전체 순이익의 83%에 육박할 정도다. 최근 들어 증권사와 투자자문사를 중심으로 자산관리 분야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투자은행의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자통법, 투자은행 산파 역할 기대

자통법이 시행되면 그동안의 업종별 규제가 기능별 규제로 바뀌고 업종 간 진입장벽이 허물어지게 된다. 증권,선물,투자신탁,투자자문,종합금융 등을 한 회사로 통합할 수 있게 된다. 대형 증권사를 통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업 확대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또 금융투자상품이 포괄주의로 바뀌면서 새로운 투자상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하지만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당장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은행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형과 노하우,지명도 면에서 세계적인 강자들과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은 자통법의 본격적인 시행시기인 2009년 초를 앞두고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자본의 확충이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들의 자기자본 규모는 외국의 투자은행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자기자본 합계는 20조2000억원으로 일본 노무라홀딩스(17조원) 한 개사보다 조금 많다. 미국 메릴린치(35조1000억원)와 비교하면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자기자본이 2조원을 넘는 국내 증권사는 우리투자,대우증권 단 2개사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자금력으로는 전 세계 투자은행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무한경쟁시대,몸집을 키우자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M&A를 통한 거대화를 우선 고려하고 있다. 올초부터 증권업계 M&A 불씨는 이미 달아올랐다. 국민은행과 기업은행 등은 한누리증권 교보증권 등 중소형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우리투자·한국투자·메리츠·NH투자·서울 등 여타 증권사들도 CEO(최고경영자)들이 공공연히 M&A 추진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증권까지 국내외 증권사 M&A 움직임에 동참하고 나섰다.

증자를 통해 회사 규모를 키우려는 증권사들도 적지 않다. 굿모닝신한 등 7개사는 2006회계연도에 9529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올 3월 이후에도 3개사가 자본금을 5090억원가량 늘렸다. 이러한 자기자본 늘리기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은 2010년까지 자기자본을 5조원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대신증권도 최근 2011년까지 자기자본을 4조원대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4~5개 금융투자회사가 종합 투자은행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특화된 전문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골드만삭스,메릴린치,리먼브러더스,모건스탠리 등 종합 투자은행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자산관리전문의 얼라이언스 번스타인과 블랙록 M&A전문의 라자드와 그린힐 주택저당대출 분야의 프리드먼,빌링스 중소기업 전문의 토마스 바이젤 파트너스 등이 틈새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서는 온라인 거래의 강점을 가진 키움이나 이트레이드증권,중소기업 대상 기업금융 업무를 발굴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교보증권,채권쪽에 특화돼 경쟁력을 보유한 한누리투자 SK 한화증권 등이 틈새시장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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