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미디어 사냥의 끝은?

[Global Issue] 루퍼트 머독, 월스트리트저널 인수 선언

세계 각국의 수많은 신문과 방송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영토 확장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그가 이끄는 뉴스코프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을 발간하는 다우존스사(社)를 50억달러에 사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외신들은 머독의 인수 추진 상황을 상세히 보도하며 월스트리트저널의 향후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언론계에 내린 '머독 경계령'

뉴욕타임스는 최근 '머독의 진실'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머독 회장의 '미디어 제국'을 집중 조명했다. 이 신문은 머독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지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그동안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를 교묘하게 이용해 왔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번 인수전에서도 가장 첨예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편집권의 독립 여부다. 기사의 방향과 선택을 결정하는 편집권은 언론의 생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신문이자 세계적인 정론지로 꼽혀 온 월스트리트저널이 머독의 손에 들어갈 경우 신문의 정체성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들은 머독의 인수에 반대하는 뜻으로 최근 출근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머독에게 비교적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말 머독과 다우존스 측이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권 독립에 관해 원칙적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스트리트저널 인수 경쟁에 잠시 뛰어들었던 제너럴일렉트릭(GE)과 파이낸셜타임스의 소유주 피어슨그룹도 이제 인수 계획을 접었다. 머독은 "월스트리트저널의 대주주인 밴크로프트 가문의 최종 승인만 남았다"고 자신하고 있어 인수 협상이 조만간 큰 진전을 볼 것임을 시사했다.

◆세계 최대 언론 재벌로

루퍼트 머독은 호주의 작은 신문사를 반 세기 만에 세계 굴지의 미디어 제국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그의 울타리 안에 있는 미디어 관련 기업만 52개국 780여개에 달한다.

1931년 호주에서 태어난 머독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데일리 익스프레스'라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1952년 아버지로부터 호주 애들레이드시의 조그만 신문사 두 곳을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는다. 머독은 사업 초기부터 '정론지'보다는 '대중지'를 지향하며 경제나 정치 기사보다 스캔들이나 범죄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머독은 1960년 시드니의 '데일리 미러'를 인수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뉴스 오브 더 월드''더 선''더 타임스''선데이타임스' 등을 사들였다. 1976년부터는 세계 최대 언론 시장인 미국 공략에 나서 '뉴욕포스트'와 '20세기 폭스 영화사' 등을 인수했다. '폭스TV'를 새로 만들었고 아시아에서는 홍콩 '스타TV'를 통해 영역 확장을 노렸다. 돈이 되면 업종도 가리지 않았다. 1998년 미국 프로야구단 'LA다저스'를 사들였고 같은 해 9월엔 영국 명문 축구단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최근엔 온라인 비즈니스에도 적극 진출,미국의 네트워크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닷컴'과 온라인 게임업체 IGN도 손에 넣었다.

◆이익극대화 전략,월스트리트에도 먹힐까

머독의 미디어 제국은 '이익 극대화'라는 분명한 목표하에서 움직인다. 그가 인수한 언론사들은 철저하게 흥미 위주의 보도 방식을 고집한다. '애들레이드 뉴스'를 운영할 당시 그는 매일 반라의 여성 사진을 실었고 영국 '더 타임스'를 인수했을 때는 기자의 30%를 선정적 보도에 익숙한 타블로이드 출신으로 교체했다. '폭스TV'도 잔인한 범죄 현장을 보여주는 '캅스' 같은 프로그램으로 단기간에 시선을 잡았다.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에 군침을 흘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주 고객이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에서 구매력이 높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일찌감치 온라인 콘텐츠의 유료화 전략에 나섰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현재 인터넷 유료 회원만 80만명을 웃돈다. 미국 내 2위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넓힐 수 있다는 게 머독의 계산. 사업의 걸림돌이 되는 정부 규제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머독의 끝없는 야심이 월스트리트저널 인수로 이어질 경우 미국의 미디어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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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제국을 만드는 그의 야망

1997년 개봉된 영화 '007 네버다이'에는 광적인 미디어그룹 총수가 악당으로 등장한다. 미디어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에 눈이 멀어 전쟁도 불사하는 이 캐릭터의 모델이 다름 아닌 루퍼트 머독이란 설이 있다. 사업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머독의 경영 방식은 이처럼 악명 높지만 성공의 기반이 된 것도 사실이다. 영국 작가 스튜어트 크레이너는 '루퍼트 머독의 사업방식(Business The Rupert Murdoch Way)'이라는 책에서 머독의 경영 비결을 소개했다.

머독의 탁월함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각에 있다. 중국 시장이 부상하자 중국계 부인인 웬디 덩을 앞세워 방송 채널 공략에 나선 게 대표적인 예다. 1990년대 중반 중국 관료들이 "영국 BBC가 중국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다"고 불평하자 그가 운영하는 위성 채널에서 BBC 프로그램을 아예 빼 버렸다.

필요하면 모든 것을 거는 승부 근성도 중요하다.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 인수 금액으로 제시한 50억달러는 시세의 두 배에 이른다. 그는 주요 인수전마다 화끈한 초강수를 쓰며 오직 이기는 데 집중한다. 주위의 비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1998년 머독은 자신이 소유한 출판사가 홍콩의 전 총독 크리스 패튼의 자서전을 발간하려 하자 편집장을 해고해 버렸다. 중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책 속에 들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정한 인물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중국 시장 역시 중요하다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머독의 자신감과 카리스마는 사업 전체를 꿰뚫어 보는 능력에서 나온다. 20대부터 신문사를 운영했기에 언론 산업의 생리에 훤하다. 3개월마다 780개에 달하는 모든 계열사를 직접 현장 점검하는 세심함도 있다. 앞으로 달라질 미디어 환경에 대비, IT(정보기술) 기업 확장에 나서는 선견지명도 자랑한다.

머독은 아직도 젊은이들에게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나? 나는 당신들이 늙었다고 생각한다"고 거침없이 얘기한다. 76세라는 나이는 머독에게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숱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과 근성은 여전히 경영자들에게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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