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모 삼성그룹 고문이 지난 5일 크로아티아 명예영사에 임명되면서 기업인들의 활발한 '민간 외교 사절' 활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97개국에서 임명장을 받은 명예영사가 111명이나 있다.

교수,의사 등도 있지만 대부분이 기업인이다.

외교부는 "기업인은 활동 범위가 넓고 재력도 뒷받침되기 때문"이라며 "수출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명예영사 111명 어떤 역할하나… 외교관보다 명예로운 '경제 외교관'

◆1970년대 첫 도입


처음 제도가 도입된 1970년대에는 각 나라가 공관 업무를 민간에서 도와줄 적합한 사람을 찾아 달라고 외교부에 의뢰했다.

1977년 아이슬란드 명예영사가 돼 올해로 30년을 맞은 조해형 나라기획 회장은 "쌍용 대표이사였을 때 박동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잠깐 보자고 해 갔다가 임명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0년대 아이슬란드 외교부 장관이 두 차례 방한할 때 경제인들을 대동하도록 조언,우리 기업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이슬란드에 고기잡이 그물과 대한항공 중고 비행기를 수출하는 계기가 됐다.

명예영사들의 모임인 명예영사단 단장이기도 한 그는 "당시는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종합상사 사장들에게 명예영사 자리를 주선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가 수출 강국이 된 지금은 기업들에 정보가 더 많다"고 말했다.

명예영사 111명 어떤 역할하나… 외교관보다 명예로운 '경제 외교관'

하지만 지금도 수출로 연결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권정달 한전산업개발 사장은 1년 전 명예영사단 주선으로 과테말라 명예영사가 됐다.

이 나라와 아무 인연이 없었지만 과테말라 대통령을 예방했다가 "발전 시설을 한국 기업이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 사업은 한전이 추진 중이다.

최근 명예영사로 임명되는 사람들은 외교부 주선보다 각 나라가 특정 기업이나 개인을 지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크로아티아와 삼성은 삼성물산이 2004년 항구도시 리헤카의 항만 현대화사업을 맡아 인연을 맺었다.

크로아티아가 현명관 당시 삼성물산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고,현 전 회장이 은퇴하면서 양 고문이 이어받은 것이다.

삼성은 "현 전 회장이 적합한 후배를 골라 물려줬다"고 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투발루에 약을 무상지원하다 투발루 명예영사가 됐다.

솔로몬아일랜드 명예영사인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은 이 회사가 현지에 여의도 면적 90배의 땅을 사 조림사업을 하는 김에 병원과 미술관을 짓고 장학재단도 만든 것이 계기였다.

◆자비로 집무실 등 운영

명예영사는 월급이 없다. 그래도 돈 쓸 일은 있다.

따로 사무실을 내거나 집무실 한 쪽에 공간을 마련,해당국 국기와 임명장을 걸어 명예영사실로 운영해야 한다.

현지에서 방한사절이 오면 '내주머니 털어' 만찬을 대접하고,면담을 주선하거나 각종 편의도 챙기며 '뒷바라지'도 해야 한다.

루마니아 명예영사인 신평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루마니아 예술인들이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도록 돕고,장소도 섭외한다.

그래도 명예영사들은 "계기가 무엇이었건 간에 일을 하다 보면 그 나라와 자연히 정이 들고 사명감도 생긴다"고 말한다.

중동 관련 비즈니스 컨설팅회사인 포시즌티엔씨 사장이자 예멘 명예영사인 정선희씨는 2004년 식도가 말라붙는 병에 걸린 예멘 어린이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주선하고 걷기 대회로 치료비도 모금했다.

백영기 전 동국무역 회장은 베닌,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아일랜드,정몽윤 현대해상보험 회장은 요르단,김영훈 대성그룹 회장,김호연 빙그레 회장,김윤광 성애의료재단 이사장은 공동으로 몽골,이혁배 동원 회장은 니제르,윤영각 삼정KPMG 대표는 세인트빈센트,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베트남 명예영사다.

LG그룹 창업주 집안에는 특히 많아서,구평회 E1 명예회장이 페루,구두회 에스코 명예회장이 멕시코 명예영사이고 2대인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이 우루과이,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이 엘살바도르,구자준 LIG손해보험 부회장이 니카라과 명예영사를 맡고 있다.

이들이 누리는 혜택은 임명국을 방문할 때 공항에서 영접 서비스를 받는 정도다.

우리나라도 해외 112개국에 140여명의 명예영사를 임명해두고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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