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횟집 조리실장으로 근무하는 이상무(35)씨는 인터넷 다음카페의 성인 조립완구 동호회인 '여유가 있는 모형'에 얼마 전 가입했다.

'프라모델'로 불리는 로봇 등 조립 완구 수집에 재미를 붙인 그에게 전국 정회원만 2000명이 넘는 이 모임은 각종 제품 정보도 얻고,원하는 장난감을 싸게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채널이다.

웬만한 조립 완구 매장을 다 훑어도 살 수 없는 희귀 제품을 가진 회원들이 적지 않다.그는 최근 마음에 드는 조립 로봇을 100만원 이상 주고 다른 회원으로부터 구입했다.

광고 사진사가 직업인 송원경(35)씨는 매달 100만원 이상을 프라모델 구입에 쓰고 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모아온 화약총과 소꼽놀이 세트,마징가Z,슈퍼맨,스파이더맨 등 각종 완구가 120만점이나 넘어서자 작년 말 서울 삼청동에 아예 장난감 박물관 '토이키노'를 열었다.

전통적 '유·청소년 산업'이던 완구시장의 주 고객층으로 성인 마니아 소비자들이 급부상하면서 장난감 산업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서울 코엑스몰의 헬로우키티 완구 매장처럼 상품의 70% 이상을 어른용으로 꾸미는 점포가 늘고 있고,각종 동호회도 급증세다.

◆장난감 성인 동호회만 300곳 넘어

업계에서 파악하는 성인 완구 동호회만도 온·오프라인을 합쳐 300개를 훨씬 웃돈다.각 동호회마다 회원이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에 이른다.이들은 대리점을 통해 신제품을 공동 구매하고 정기적으로 모임도 갖는다.

성인 완구 마니아가 늘면서 취미생활을 아예 본업으로 바꾸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프라모델 전문점 '하비랜드'를 운영하는 정우영(38) 씨는 7년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릴 적부터의 꿈을 좇아' 지금의 점포를 열었다.그의 고객은 대부분이 그와 나이가 비슷한 성인들이다.

저출산 등으로 수요기반이 약해진 완구업체들이 어린이 장난감 대신 단가가 비싸고 고객 충성도도 높은 성인용 완구 취급 비중을 높이고 있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국내 선두 조립완구업체인 아카데미과학의 지난해 매출 250억원 중 성인 완구 비중이 100억원에 달했다.

아카데미과학의 RC(리모트 컨트롤러) 제품인 '피쿠즈(Picooz) 헬기'는 지난해 12월 출시된 이후 월 2만 개 이상 팔리고 있다.

가격은 4만원대.

이달 초 첫선을 보인 'X-트윈’(비행기·3만3000원)도 2만 개가 모두 동이 난 상태다.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파는 무선 잠자리 모양의 RC제품인 드래곤플라이 가격이 5만6800원,인공지능 로봇인 로보사피엔은 39만6000원.고객 중 성인 남성 비중이 50%대다.RC로 조종하는 자동차 비행기 같은 장난감은 가격이 최고 300만원까지 이른다.

온라인 장터인 G마켓에서는 영화 스파이더맨의 인기에 힘입어 '스파이더맨 피규어'(관절이 움직이지 않는 영화 캐릭터 인형)를 하루 20여개씩 팔고 있는데 매번 품절이다.

고경민 아카데미과학 차장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기보다는 여가 시간을 활용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게 새로운 문화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자업계도 "어른 입맛 잡아야 대박"


제과업계에서도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히트상품을 만드는 공식으로 떠올랐다.

구매력을 갖춘 어른이 된 뒤에도 여전히 과자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가격 저항이 덜한 '프리미엄' 성인과자일수록 잘 팔리고 있어서다.

롯데제과의 자일리톨과 드림카카오,CJ의 맛밤 등이 대표적인 성인용 히트상품이다.

안성근 롯데제과 홍보팀장은 "아토피 등 어린이용 과장의 유해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으로 성인 과자시장이 뜨고 있다"며 "어린이 과자가 기능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성인 과자는 기능성은 물론 디자인감각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동민/김진수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