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된 9일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룹 수뇌부는 26층에 마련된 상황실 문을 걸어 잠그고 긴급회의를 소집하는가 하면 임직원들은 향후 사태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탄식을 쏟아냈다.

상황실은 24시간 대응체제를 갖추기 위해 그룹 경영기획실 임직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룹 측은 일단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김 회장의 사법처리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악화된 여론이 좀처럼 돌아서지 않는 등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한숨만 늘고 있다.

금춘수 그룹 경영기획실장(부사장)은 "현재로서는 아무 얘기도 해 줄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상황실 설치 … 비상경영체제로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됨에 따라 그룹은 최악의 경우 김 회장의 부재 상황을 전제로 한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보복 폭행' 사건의 후폭풍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본격 나선 것.그룹 상황실은 또 모든 정보 및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해 경영기획실에 보고하고 있으며,계열사별 업무도 종합적으로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 관계자는 "비상체제를 어떻게 가동할 것인지 등을 포함한 시나리오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당분간 김 회장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직접 재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경영사안을 직접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경우 그룹 실무는 금 부사장을 중심으로 채정석 부사장(법무실장),장일형 부사장(홍보팀장) 등이 보좌하는 형태로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또 과거 그룹의 '2인자'로 불렸던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 등 4명의 부회장단도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이며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까지 참석하는 '확대 경영진회의'도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이미 '보복 폭행' 사건 처리의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한 체제도 갖췄다.

이번 사건이 경찰과 검찰을 거쳐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최소 2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고,3명의 개인변호사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그룹 법무팀의 채 부사장을 비롯한 10여명의 변호사도 업무 협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각 사별 자율경영' 강화


㈜한화,대한생명,한화석유화학 등 주력 계열사 CEO 10여명은 수시로 장교동 본사 사옥으로 출근하거나,전화를 주고받으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화는 일단 별도의 대책기구를 구성하거나 권한 대행을 정하지 않고 '각사(各社) 경영체제'로 운영키로 방침을 정했다.

계열사별 CEO들이 책임지는 방식으로 위기 상황을 타개하자는 차원에서다.

또 한화는 조만간 상무 이상의 임원급 확대 회의를 갖고 향후 비상체제 설명 및 각 계열사 안정화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 고위 관계자는 "별도의 통합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더라도 서로 분야가 다른 계열사의 특성상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데다,주요 사안의 경우 회장의 재가가 필요한 만큼 일단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를 확립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흔들리는 글로벌 경영

하지만 그룹이 아무리 계열사별 책임경영을 주창한다고 하더라도 김 회장 부재에 따른 경영공백은 적잖은 충격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새 기업이미지(CI)를 발표하면서 '글로벌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세웠던 대부분의 사업계획들이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회장이 경영 사안을 직접 챙겨오던 스타일을 감안할 때 해외사업 확장은 당분간 물건너 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한생명의 경우 중국과의 합작사업뿐만 아니라 예금보험공사 측과의 국제중재 절차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중재절차가 지연되면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한 분쟁이 장기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한생명 상장을 통한 한화그룹의 금융네트워크 추진 계획은 당분간 보류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룹의 가장 큰 고민이다.

'글로벌 뉴 한화'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그룹의 CI작업도 현재로선 '역효과'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그룹 측은 당분간 신문·방송광고를 중단하는 등 광고·마케팅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손성태/장창민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