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사르코지의 승리, 프랑스는 성장을 선택했다
지난 6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집권 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52)가 좌파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53)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르코지가 공언한 과거 정치와의 단절과 자유경쟁시장 중심의 과감한 경제개혁 공약이 경제 부활을 기대하는 프랑스인들의 열망에 부합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 첫 대통령으로서 프랑스와 유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민자 2세 아웃사이더에서 권력의 핵심으로

사르코지는 나폴레옹 1세와 곧잘 비교된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강한 행동력과 카리스마 때문만은 아니다.

변방의 코르시카 출신인 나폴레옹처럼 사르코지의 뿌리도 이방인에 가깝다.

그는 헝가리인 아버지와 그리스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프랑스 정치인의 정통 엘리트 코스인 '그랑제콜'을 나오지도 않았다.

대신 파리 10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19세 때 보수당 선거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를 마음에 품었고 28세 때 파리 교외 뇌이쉬르센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성장세를 탔다.

2002년 총선에서 UMP의 압승을 이끌면서 시라크 정부에서 내무 장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당시 범죄 척결에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국민적 인기를 타기 시작했다.

출신과 교육배경 면에서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권력의 핵심에 오른 것도 특유의 열정과 과감함이 밑천이 됐다.

◆성장 중심의 강력한 경제개혁 이어질 듯

사르코지의 강력한 개혁 의지에는 프랑스 국민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우파로서 선거운동 기간 노동시장 유연화와 감세 정책 등을 내걸었던 만큼 앞으로 성장 위주의 경제개혁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회당의 상징적 정책이었던 '주35시간 근로제'를 손질해 더 일한 만큼 더 받아가는 시스템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영기업 민영화와 공공 서비스 비용 축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완전 시장경쟁에 기반한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겠다는 사르코지도 자국 경제 보호에는 민감한 입장이다.

불법 이민자의 유입은 막되, 양질의 노동력은 적극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민자 통제 정책을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민자 문제는 그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2005년 내무장관으로 있을 때 이민자 폭동이 일어나자 이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며 강경하게 진압했던 사르코지다.

이에 따른 이민자들의 격렬한 반발심과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그의 숙제다.

◆변화의 열망은 프랑스를 바꿀 것인가

루아얄은 프랑스 대선 역사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결선투표에 나가는 기염을 토했지만 여성 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그는 기존 사회당 후보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며 새로운 참여 민주주의를 선보였다.

참신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사르코지의 인기를 바짝 추격했지만 판세를 뒤집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올해 프랑스 대선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성공적 평가가 많다.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현대사회의 흐름과 달리 결선투표율이 83.97%를 기록하며 높은 열기를 보였다.

좌우 진영,남녀 후보의 역사적 대결인 데다 실업과 이민 문제 등 여러 쟁점을 놓고 치열한 공약 경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극우파 후보 장 마리 르펜을 결선 투표에 올린 2002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유권자의 열망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변화에 대한 대중의 높은 갈망을 사르코지는 앞으로 어떻게 실현해나갈까.

침체된 경제를 일으키고 민족적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나가려는 프랑스의 새로운 걸음에 우리의 관심도 크다.

올 연말이면 우리나라도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해 국민적 열정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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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제, 무조건적인 다수결보다 낫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여러 후보 중 다수 득표자를 단 한 번의 투표로 선출한다.

그러다 보니 과반수의 지지를 얻기 힘들어 당선자의 대표성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무조건적인 다수결은 국민의 대의를 반영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한국의 경우 6월항쟁 직후 치러진 1987년 대통령 선거가 그 예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거셌지만 김영삼 김대중 두 후보에게 표가 분산(각각 28%,27%)되면서 결과는 노태우 후보(36.6%)의 어부지리 당선이었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1차 투표를 한 후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득표자가 최종 결선투표에 오르게 된다.

이번 선거에선 1차 투표에 극좌에서 극우까지 12명의 후보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결선투표를 통해 표를 집중할 수 있어 당선자의 대표성은 매우 높다.

한국도 1987년 당시 결선투표를 했다면 양 김씨 중 한 명이 승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작부터 제기되기도 한다.

대통령중심제인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대통령과 의회의 '혼합통치체제'다.

국회를 책임지고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것은 총리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대통령이 주도한다.

1962년 개헌으로 선거인단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선출되면서 국민주권으로부터 직접 권력을 이양받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총리와 각료를 임명할 뿐 아니라 총리 및 상하원 의장과 협의해 하원을 해산할 수 있다.

또 국군 최고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해상·항공 핵무기도 통제하는 등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다만 야당이 국회 다수당이 될 경우 총리는 국내 정치문제에 대해 독립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집권 양상이 이른바 '동거정부'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 정부에서 사회당이 다수당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자 우파였던 자크 시라크를 책임총리로 재직시킨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동거정부는 좌우 정당의 협력 없이는 국정이 불안해질 수 있다.

따라서 현행 프랑스 헌법은 2000년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여 국회의원 임기(5년)와 일치시켰다.

대선 직후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 정부·여당에 권력을 몰아주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