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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ㆍ중소기업 CEO 임직원 '끌어안기' 보폭 넓혀

코오롱그룹 중앙기술원에 근무하는 권 모 대리(34세)는 밸런타인데이였던 지난 2월14일 출근 후 책상위에 놓인 선물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노총각인 그에게 색색의 초콜릿이 가득한 시험관 하나가 배달된 것.

그 안에는 '오늘은 꼭 전하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한다고!'라는 메시지를 담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이웅열 회장이 직원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였다. 이날 코오롱그룹은 전 임직원에게 초콜릿과 이웅열 회장의 메시지가 담긴 시험관을 이같이 선물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의 '스킨십 경영'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룹 총수들과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나 직접적인 현장 접촉을 통해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는 것.

빌딩 최고층의 넓은 사무실에 은거(?)해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근엄한 회장님'이 권위의식을 버리고 '직원들 속으로'를 외치며 이들 곁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면 '계급장'을 떼고 같이 동화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지만 항상 곁에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 CEO의 스킨십 경영이 만들어내는 동질감은 활기차고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데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의 개인 홈페이지(leewoongyeul.pe.kr)는 인간적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메인화면을 비행기 내부처럼 꾸며 마치 이 회장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 기분이 들게 한다. 'My Class'를 클릭하면 그의 리더십과 취미, 주량 등 소소한 인간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CEO 코너'(www.hyundaigroup.com/ceo)를 클릭하면 총수로서의 인간적 고뇌, 스파게티를 기막히게 잘 만들지만 한식을 좋아했던 남편 때문에 실력을 뽐낼 기회가 없었던 얘기 등을 만날 수 있다. 현 회장이 남편(고 정몽헌 회장) 대신 기업 경영을 맡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어떤 일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사적인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도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다.

'홈피 운용 8년차'인 LG 구본무 회장(www.koobonmoo.pe.kr)은 베테랑답게 콘텐츠가 다양하다. 어릴 적부터 새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공존과 상생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자연과 나' 코너에 나와 있다.

이 밖에 '찜질방 함께 가는 부회장님'으로 통하는 김쌍수 LG그룹 부회장의 주말데이트, 주요 계열사 임직원들과 함께 매년 신년 산행에 오르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스킨십경영의 좋은 사례다.

최근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몇몇 시중은행장, 중소기업 CEO들도 정기적인 조찬이나 만찬모임 또는 점심시간의 도시락 간담회를 통해 직원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애로사항을 듣고 경영비전을 제시하는가 하면 e메일을 통해 자신의 연애담 등 사생활을 소개하면서 권위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스킨십경영을 통해 직원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선 것이다.

기업은 어느 한 사람의 스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단독 콘서트가 아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소임을 잘 수행할 때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교향곡 연주와 같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비보이들의 퍼포먼스도 언뜻 보면 화려한 개인기가 돋보이긴 하나 그 속에는 음악과 어울리는 하모니와 팀워크가 중시된다.

'남들도 다하는' 구호에 그치는 상생이 아니라 직원들, 협력업체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게 무언지 귀 기울이는 진정한 의미의 '스킨십경영'이 21세기 새 경영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