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 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

그는 30년 전,이 낯선 땅에 기꺼이 날아왔다. 1977년 이름도 잘 모르는 독일의 한 감독이 한국에 와서 '페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이란 영화를 꺼내 들었다. 그 자리에 더벅머리 고등학생,반짝이는 눈을 가진 비범한 청년,그리고 통역까지 할 수 있는 또 다른 '학삐리(학생)' 세 명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정성일 선생님,김홍준 정유성 교수였다나.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한국 영화계를 지난 20년간 누빈 이들 영화광은 바로 빔 벤더스가 있던 그날 한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젠장…,부러웠다. 문화원 세대 선배들이.

빔 벤더스는 내게 '길 위의 음유시인'이었다. 로드무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길에서 시작해서 길 위에서 끝나는 그의 영화가 늘 내 영혼의 겉봉에 외로움이란 우표를 꾸욱 찍는 것 같았다.

격식 차린 대사관 디너파티. 빔 벤더스 부부와 오후를 함께 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1977년 말고 2000년 부산 영화제에 빔 벤더스 감독이 왔을 때,그 자리에 있던 사람을 찾는다. 물론 누가 걸렸겠는가.

2000년 부산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아주 성실하고 지나치게 재미없을 것 같은 남자. 곧이곧대로 독일 영화를 꾸역꾸역 보고 있는 이 남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골려줘야지. 난 얌전한 남자만 보면 골려주고 싶다('유혹한다'의 퇴행 버전이지 싶다). 그 남자에게 속삭였다. "우리 도망갈까?" 얼굴이 벌개져서 별 말도 못한다. "어떻게 그래요…."

그날 밤,그는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보다 '시티 오브 엔젤'을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기이했다. 아무리 봐도 할리우드제가 더 낫다고? 본인이 독일 영화 전문가인 분께서…. 나중에 한방을 쓰게 된 그 남자,내 남편은 그랬다. "빔 벤더스의 영화처럼,나를 위해 추락해 주오. 나의 천사가 돼 줘요." 그 말에 결혼을 결심했건만,이젠 다른 주장을 펼친다. 자기가 내 삶을 구했다나 어쨌다나.

나중에 빔 벤더스 감독이 진지하게 물어본다. "정말 남편이 내 영화보다 '시티 오브 엔젤'을 더 좋아했나요?" 아휴… 죄송. "저…,감독님 때문이 아니라 멕 라이언 때문이었대요." 정말 떡대 그 자체인 감독이 진지하게 물어보는데 난 왜 피식 웃음이 날까. 그렇다. 위대한 사람과는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황홀한 사건이 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과 그랬고,잔 모로와 그랬다. 영화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우리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역사가 되는 순간.

난 지금도 '파리,텍사스'의 라이 쿠더 음악만 들으면 울음을 참을 길이 없다. 이제 베를린 천사를 만들어낸 이는 영화 천사가 되어 서울 남산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욕망의 날개',당신 영화에 감사한다. 고마워요, 미스터 벤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