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당신이 말하는 모든 사항은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난투극 끝에 혹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던 범인을 극적으로 체포한 뒤 수사관이 빠르게 전하는 말이다. 이름 하여 '미란다 원칙'.

1963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납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어네스토 미란다가 변호사 없이 자백했다 법정에서 번복,애리조나 주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연방대법원에 상고,진술거부권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66년 무죄 선고를 받은 데서 생겨난 피의자 보호장치다.

살다 보면 죄 짓고 혹은 죄 지었을지 모른다고 잡혀가는 것만 두려운 건 아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는 건 당연하다'지만 세금 앞에서 마음 편한 사람은 없다. 아니 누구나 싫고 무섭다. 미국 영화 '하트 브레이커스(Heartbreakers)'와 '잡을 테면 잡아봐(Catch Me If You Can)'는 미국의 세금 징수가 얼마나 철저하고 지독한지 전해준다.

'하트 브레이커스'의 주인공 맥스 모녀는 꽃뱀. 작전에 성공한 그들 앞에 나타난 국세청 직원은 차갑게 내뱉는다. "세금만 내면 다른 일은 눈 감겠다. "그들은 결국 빈털터리가 된다. 희대의 사기극을 다룬 '잡을 테면 잡아봐'에서도 사건의 발단은 세금이다. 세무조사로 집안이 망하자 사기를 친 것이다.

바른 납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납세자에게도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알려주는 세정(稅政)의 미란다 원칙이 생긴다고 한다. 국세청이 '납세자 권리헌장'을 개정하면서 세무조사 사전 통지같은 기존 내용에 '조사 연기 승인 여부를 통지받을 권리'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모든 헌장이 그렇듯 납세자 권리헌장도 선언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언적인 것이라도 자꾸 시행하다 보면 실질적이고 당연한 사항이 될 게 분명하다. 잘못을 추궁하고 밝히는 일이라도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고 소명할 기회를 주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기본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