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공군 비행장 터였던 대전시 둔산동은 20년이 지난 현재 '대전의 강남'으로 탈바꿈했다.

90년대 후반 들어 시청,법원,검찰청 등 행정기관과 금융기관 등이 둔산동 일대에 속속 들어서면서 전체적인 상권 수준이 업그레이드된 것.둔산동의 화려한 변신은 1988년 3월 시작됐다.

대전시 둔산동·월평동·탄방동·갈마동 등을 대상으로 한 면적 877만8000㎡(262만5000평),계획인구 22만6160명(5만6540가구) 규모의 중부권 중핵도시 육성 사업이 단초였다.

한적한 변두리 동네가 대전의 신흥상권으로 부상,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룬 셈이다.

둔산동 상권은 이처럼 도시 개발과 더불어 발전해 왔다.


갤러리아백화점 롯데백화점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소매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으며 둔산과 유성관광특구를 연결하는 월평동에는 대전지역 최대 아울렛타운인 '패션월드'도 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경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둔산동 상권도 '외화내빈'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舊)상권인 대전역 앞의 은행동에 비해 장사가 오히려 못하다는 얘기다.

쇼핑과 외식,유흥 등 복합상권 성격을 지닌 은행동과 비교하면 유흥상권 성격이 강해 경기 타격이 심했다는 분석이다.

둔산동 먹자타운에는 대부분 50평 이상의 중대형 가게가 많은 편이다.

기존 상가를 뜯어고친 게 아니라 새로 조성하는 신시가지여서 처음부터 점포들을 널찍하게 만들어놓은 까닭이다.

8년 가까이 이 곳에서 장사해왔다는 부대찌개 음식점 관계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으나 가족단위 외식 손님이 별로 없어 매출에 큰 도움이 안된다"며 "한 달에 1∼2회 정도 단체손님이 올 때 오르는 반짝 매출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매장 크기가 50평 정도로 보증금 1억원,월세 700만원에 계약했는데 하루 평균 매출이 100만원도 안 되는 날이 많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가게만 힘든 게 아니다.

50평 안팎에 월세가 600만∼800만원인 가게 중 금요일 저녁 자리가 꽉 찬 곳을 찾기 힘들었다.

1층 매장보다 임대료가 조금 싼 2층 이상 매장은 더 심각했다.

수시로 주인이 바뀌는 실정이라고 상인들은 전한다.

오종성 '5.5 춘천닭갈비' 사장은 "구 도심지인 은행동보다 매출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 상인들이 2~3년 전부터 둔산동으로 몰려들기 시작해 이제는 공급과잉 상태에 이르렀다"며 "전문성 없이 자리만 보고 들어와 망해 나가는 가게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신흥 상권이 단기간에 손님을 끄는 동력은 나이트클럽과 같은 유흥업소다.

'물 좋다'는 소문만 돌면 자연스레 손님들이 몰린다는 이유에서다.

둔산동에도 크고 작은 나이트클럽이 5개가량 있다.

이 중 서울에서 유행하는 힙합클럽 세 곳이 가장 인기있다고 한다.

유동인구가 점차 줄어가는 둔산동 상권에 그나마 고객을 끌어오는 전위대는 바로 이 힙합클럽이라고 인근 상인들은 얘기한다.

먹자타운 일대 50여개 주점들은 금요일과 토요일 매출에 의존하는 경향을 지닌다.

평일 밤에는 매장이 한산하다는 얘기다.

갤러리아백화점 인근 퓨전 주점 관계자는 "입지가 좋아 예전엔 30대도 많이 왔는데,지금은 20대로 연령층이 좁혀져 그나마 하루 다섯 테이블도 못 채운다"며 "주변 가게와 경쟁이 치열해 메뉴 가격을 낮추거나 신메뉴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이블 15개,30평 규모인 이 가게의 한 달 평균 매출은 3000만원 안팎으로 지난해에 비해 30% 정도 줄었다.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수' 노래방도 금요일 저녁에나 반짝 매출을 올릴 정도다.

이 노래방 관계자는 "근처 주점과 식당이 오후 5시나 돼야 문을 열기 때문에 이보다 늦게 문을 열 수밖에 없다"며 "낮엔 평일,주말 관계없이 1∼2팀 정도 오고 밤 12시가 넘으면 손님이 거의 끊긴다"고 말했다.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영동순대 김인숙 사장은 "3년 전부터 매출이 뚝 떨어졌다"며 "장사가 안돼 아르바이트생 없이 혼자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17평 규모의 이 가게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90만원을 내고 있다.

대전시내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기로 소문난 둔산동 주민들은 길거리에 버려진 유흥업소 전단지에 불만을 털어놓는다.

유흥상권이 아파트 단지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딸을 둔 주부 김정예씨(41)는 "아파트 앞에 유흥가가 있다 보니 아이들 교육상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다"면서 "큰 상권이 근처에 있지만 유흥업소만 잔뜩 눈에 띄고 정작 주말에 가족이 함께 갈 만한 정갈한 음식점은 드물다"고 말했다.

둔산동 상권이 빛을 바래긴 했지만 호재가 없지는 않다.

이애숙 세종부동산 대표는 "둔산동을 지나 유성구 노은동까지 가는 지하철이 4월께 개통되면 유동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점포가 포화상태여서 급작스레 둔산동 경기가 호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성호·이미아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