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권 보장' '경제 영향 최소화' 위해 법정구속은 안해
김동진 부회장 등은 집행유예 선고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하고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오 부장판사)는 5일 비자금 693억원을 조성하는 등 9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천100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지만 "방어권을 보장하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에 허가됐던 보석 결정을 취소하지 않는다"고 밝혀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현대차그룹 회장 지위를 이용해 단기간에 대규모 비자금을 은밀히 조성해 자의적으로 사용한 행위는 기업 경영의 건전성과 자율성을 해치는 행위"라며 "선진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불법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현대우주항공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배임, 현대강관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배임, 본텍 유상증자 과정의 배임 등 정 회장의 공소사실 4가지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히 정 회장측이 혐의를 부인한 현대우주항공 유상증자 과정의 배임에 대해 "결국 현대우주항공이 청산돼 2회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주주들에게 손실이 현실화됐다"는 등의 이유로, 현대강관 유상증자 과정의 배임에 대해 "해외펀드를 통한 우회출자가 없었더라도 곧바로 부도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고 실제 현대차 등은 투자액의 90%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는 등의 이유로 각각 유죄를 선고했다.

정 회장은 2001년 이후 비자금 693억원을 조성하는 등 900억원대 회사 자금을 조성해 횡령하고, 자동차부품 회사 ㈜본텍을 그룹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아들 의선씨와 글로비스에 실제 가치보다 훨씬 미달하는 가격에 신주를 배정해 이익을 준 동시에 지배주주인 기아차에는 손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1999∼2000년 청산이 예정돼 있던 현대우주항공 채무에 대한 정 회장 개인의 연대보증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유상증자에 참여시키고, 자금난을 겪던 현대강관이 유상증자를 하자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역외펀드를 설립해 현대차ㆍ현대중공업의 자금을 증자에 참여시켜 손해를 끼친 혐의로도 기소됐다.

정 회장과 함께 기소된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이, 이정대 재경본부장과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에게는 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 부회장의 경우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정대 본부장은 비자금 조성 실무를 관장했지만 사용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승년 본부장은 당시 비서실장으로서 범죄 가담정도가 낮다는 이유로 각각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편 재판부는 농협 부지가 현대차그룹에 매각된 데 대한 사례 명목으로 김 부회장이 정대근 농협 회장에게 3억원을 준 뇌물공여 혐의는 "농협은 국가가 운영 전반에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농협 임직원을 `공무원'으로 판단해 피고인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