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道永 < 서울시립대 교수 · 도시사회학 >

전(全)지구화가 진행되고 전반적인 사회 환경이 변함에 따라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직장에만 매달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후기 산업사회의 특성상 각 개인이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지식자본'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것도 상식이 됐다.

미국의 경우 현재 직장에 취업해 있는 사람들이 은퇴하기 전까지 평균 일곱 번 정도 직장을 옮기는 추세이며,경우에 따라서는 일생을 통해 직종의 전환도 여러 번 겪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평생을 학습하면서 적응하고 자기 쇄신을 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대학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강조하는 것도 당장의 단기적인 지식 내용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지식화하고 소화,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속한 학과에서는 2년 전부터 모든 교과목들을 다시 편성하고 전체를 모듈에 따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운영해 왔다.

그런데 막상 교과목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문제점이 나타났다. 그것은 일부 학생들,특히 학생들의 학업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이 '창조적인 지식'과 '현장성'을 높인 '능동적 학습능력' 개발 교과 프로그램을 대단히 부담스러워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역동적(力動的)으로 변화하는 직업 환경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은 역동적인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창조적인 직업을 별로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 변화가 빠를수록 학생들은 "우리 부모님이 그러시는데,좀 재미없고 월급 적더라도 평생 변화 없고 연금(年金) 확실한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재촉하시는데요"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대학 졸업생이 응시하지도 않았던 9급 공무원 시험마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하늘처럼 높은' 취업자리가 되어버렸다. 사회현장에 파고들어가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분석하는 각종 '현장 과목'들은 그것이 부담스럽고 공무원 시험공부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는 인식으로 기피대상이 된다. 이런 현상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변화가 두려울수록 그에 맞서기보다는 웅크리는 습성 또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볼 때 참으로 난감함을 금할 수 없다. 가장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젊은 세대들이 오히려 현재 조금 가지게 된 한국사회의 작은 경제적 안정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서,자신의 일생 전체를 열정과 꿈이 없는 것으로 만들 준비에 자발적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삶도 아쉽고 안타까운 법인데,아예 처음부터 꿈을 가지는 일 자체를 스스로 포기하는 젊음,그것이 젊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그렇게 꿈과 열정을 접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는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까? 또는 그런 젊은이들이 취업을 잘하기는 할까? 실업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구조적인 실업의 원인이 되지는 않을까?

지난해 11월,이번 겨울에 졸업하게 되는 우리 학과 졸업예정자 중 몇 명이 자신들이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음을 알리면서,마침 학과에서 준비한 취업특강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들은 학과 공부나 영어 토익 성적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아주 출중한 편도 아니었다. 그들은 흥미롭게도 과외활동과 학과 학생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학생들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기호(嗜好)가 뚜렷했으며,그 일에 성실하고 열심이었다. 그런 면에서 선후배들과 주위 친구들로부터도 인정받던 학생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또는 관련 분야의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기는,꿈이나 희망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안정'만을 좇는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직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평생을 퇴근시간과 휴가만 기다리며 직장생활을 때우듯 보내는 '안정된 직장'에서의 일생은 또한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