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일전에 중학교 2학년생 아들을 둔 동료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아들 녀석이 친구를 데려왔기에 "저 친구는 공부 잘하냐?"고 물었더니 "응 잘해. 남자 중에서 1등이야"하더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여풍당당의 열기는 비단 우리네만의 특유한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영국만 해도 최근 교육계의 뜨거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여학생의 학업수행 능력이 남학생을 추월하고 있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음에 모아지고 있다 한다. 덕분에 어떻게 하면 남학생들의 학업 부진을 극복하느냐가 새로운 골칫거리로 부상(浮上)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학생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된 원인으로는 세 가지가 지목되고 있다.

첫째는 엄마의 양육 및 교육태도 변화다. 예전 엄마들은 전통적인 성(性) 역할 규범에 의거해 '아들은 남자답게,딸은 여자답게' 키웠으나,요즘 엄마들은 요람(搖籃)에서부터 양성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엄마의 학력이 높을수록 딸에 대한 기대가 높게 나타남은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전문직에 진출해 성공한 엄마 세대가 증가하면서 딸 세대에게 긍정적 역할 모델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 연구에서도 딸이 사춘기에 이르면 일하는 엄마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지면서 모녀 관계의 만족도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둘째는 교사의 태도를 위시한 교육 환경의 변화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90%는 남성이었고,'남성=사회활동,여성=전업주부' 모델이 자연스레 등장했으며,여학생의 이공계 진학이나 전문직 진출을 만류하는 교사들이 주류(主流)를 이뤘었다. 하지만 최근의 추세는 세계 유수의 의학 법학 경영학 등 전문대학원 여학생 입학률이 과반수에 이르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셋째는 남학생의 학업 집중도가 여학생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은 여학생에 비해 정서적 성숙이 서서히 진행되는 데다,컴퓨터 게임 오락 포르노 등 불건전한 환경에 쉽게 유혹(誘惑)을 느끼며,음주 흡연 폭력 등 위험한 환경에도 쉽게 노출(露出)된다는 것이다.

한데 안타까운 건 여풍당당의 위세가 교실 울타리를 벗어난 후 오래지 않아 날개를 접고 머리를 수그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한 경제학자는 이 안타까움을 '버클리 효과'를 빌려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버클리 효과'라 함은 버클리 대학 졸업생들의 사회적 위상(位相)이 학교 명성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현실을 일컫는 개념이다. 미국 내 뿌리 깊은 인종차별로 인한 불행한 결과임은 물론이다.

버클리 대학은 널리 알려진 대로 백인 학생이 소수요 아시아계 이민자 자녀들이 다수를 이루는 곳이다. 입학성적이 우수한 아시아계 학생 대신 백인 학생 할당제를 실시할 수는 없다는 데에 버클리 대학의 고민이 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여학생 비율이 급증하고 있음에 남몰래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서울의 유수 사립대학과 버클리 대학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한때 지금의 여풍당당 추세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고위 관료,기업 경영진,사회 지도층 인사의 다수를 여성이 점하게 되리란 장밋빛 전망이 우리를 현혹케 했지만,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우리보다 20여년 앞서 여풍당당을 경험한 미국의 경우,예일 로스쿨 졸업생의 40%가 여성이지만 이 가운데 법률회사의 파트너 지위에 올라서는 여성 비율은 5%를 넘지 않고,하버드 MBA의 절반가량이 여성이지만 지난 5년간 포천지(誌)의 500대기업 내 여성 경영진 비율은 약 7% 수준에서 조금도 증가하지 않았다.

진입 장벽을 당당하게 넘어선 우리네 딸들 앞에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장애물(障碍物)이 놓여 있는 셈이다. 이들 '미묘한(subtle) 차별'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일이 이제부터의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