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영미씨는 1990년대 초 '서른,잔치는 끝났다'고 썼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영상매체는 여성들에게 '서른,잔치는 시작됐다'고 말한다. 나이에 주눅들지 않는 서른살 파티셰를 내세운 '내 이름은 김삼순'이 공전의 히트를 친 뒤 국내 드라마와 영화는 제2,제3의 김삼순을 쏟아낸다.

TV드라마의 경우 지난해 33세 잡지기자(고현정)의 삶을 다룬 '여우야 뭐하니'를 내놓더니,새해 들어서자마자 역시 서른세살 먹은 홈쇼핑 MD(채림)를 주인공으로 한 '달자의 봄'을 발진시켰다. 영화쪽에선 '올드미스 다이어리'도 모자라 아예 '언니가 간다'라는 노골적 제목을 내걸었다.

TV와 스크린 속 인물은 소위 노처녀에 그치지 않는다. 공중파 3사의 아침드라마 여주인공은 모두 이혼한 30대다. 그러다 보니 주연과 조연을 맡는 배우나 탤런트 또한 30대가 크게 늘어났다. 극(劇)뿐만 아니라 토크쇼나 연예 오락프로그램에서도 기·미혼 할 것 없이 30대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언니들의 행진'인 셈이다.

대중매체 속 '언니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미혼은 김삼순처럼 분명한 직업이나 일을 갖고 있고,내숭은커녕 솔직하고 과감한 표현도 서슴지 않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여리고 운명같은 사랑도 꿈꾼다. 이혼한 경우엔 사정이 좀 달라서 주로 전업주부 출신이지만 늦게나마 홀로 서려 한다.

어느 쪽이든 더이상 자기 생각이나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국내 영상물이 이처럼 30대 여성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27.7세. 서울여성은 28.6세로 돼 있다. 우리식 나이론 스물아홉,서른이다. 서른살 미혼이 이상할 것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여성들이 닮고 싶은 캐릭터 1위는 '소서노'(주몽),2위는 김삼순,3위는 '조은수'(있을 때 잘해) 같은 '자기 주도적 인물'이라고 한다. 사랑하되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극처럼 만만하지 않다. 대리만족까진 모르지만 극과 현실을 혼동하는 일은 금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