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 시인·문학평론가 >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 '라는 시구는 조지훈 선생의 '낙화'라는 시의 첫머리다. 꽃철 아득한 엄동설한인데 꽃타령이라니! 혀를 차실 분도 없지 않겠다. 하나 겨울이 깊으면 봄이 머지않다고 노래하는 게 시인이다. 모든 게 때가 있다. 꽃 필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고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임기말이다.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 더 의욕적으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계획했던 일들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나라 안팎의 처지가 팍팍하고 서민 살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하나 그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 듯한 세태가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노 대통령 때리기가 금도를 넘어선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며칠 전 피로가 누적된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의 만찬 모임에 불참한 것을 두고 "만찬 모임조차 수행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무능력"을 심하게 나무라는 야당 의원도 있었다. 그 여성의원이 독설로 이름난 사람이긴 하지만 경멸을 담은 그 언사가 모욕적으로 들리는 건 나만의 심사일까. 대통령이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야당과 일부 언론과 기득권은 한패가 되어 흔들고 발목잡기를 일삼은 사람들이 과연 대통령의 무능력을 탓할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인기가 있든 없든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다. 민의로 선출한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그 얼굴에 침 뱉는 건 제 얼굴에 침뱉기다.

꽃 지는 걸 바람의 탓으로 돌려 탓하려는 게 사람의 성정(性情)이다. 그러나 시인은 지는 꽃을 두고 바람을 탓할 수만은 없다고 노래한다. 바람을 탓한다고 해서 꽃의 낙화를 막을 수는 없다. 바람이 불든 말든 꽃은 지고 꽃이 진 뒤에는 새로운 꽃들이 피어난다. 꽃이 지는 건 바람의 탓이 아니라 쇠락의 기운이 그 시각에 맞추어져 있던 까닭이다. 꽃 지는 아침이 있는 건 그 전에 '꽃망울 속에 새로운 우주(宇宙)가 열리는 파동(波動)!'(조지훈,'花體開現')이 있기 때문이다.

꽃 피는 아침이 있다면 꽃 지는 아침도 있다. 꽃망울을 열게 하는 힘은 우주에 꽉 차 있는 파동이다. 파동은 다름아닌 기(氣)다. 꽃이 지는 것도 꽃이 피는 것도 활동운화하는 기(氣)가 작용하는 탓이다. 조선시대의 선비 혜강 최한기는 1857년에 '기학(氣學)'을 탈고하는데 그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무릇 기(氣)의 성(性)은 본래가 활동운화하는 물건이다. 그것이 우주 안에 가득 차서 터럭끝만큼의 빈틈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가 모든 천체를 운행하게 하여서 만물을 창조하는 무궁함을 드러내지만 그 맑고 투명한 형질을 보지 못하는 자는 공허하다고 하고 오직 그 생성의 변함없는 법칙을 깨달은 자만이 도(道)라 하고 성(性)이라 한다.' '낙화(落花)'의 시인은 꽃잎이 지는 어느 아침 바람결에 꽃잎을 떨구는 꽃,스러지는 성긴 별들,귀촉도 울음소리,다가서는 먼 산,흰 미닫이문에 어리는 지는 꽃의 그림자 속에서 우주의 움직임을 느낀다. 천체를 운행하게 하는 기가 만물에 작용해서 일으키는 무궁함을 문득 인지한다. 그게 우주의 섭리다. 시인은 우연히 꽃이 지는 것을 보며 우주의 섭리를 느낀다.

묻혀서 홀로 사는 이의 고요한 마음에 이것들이 환하게 비치는 것이다. 울고 싶어 한 것은 그 느낌,그 움직임을 감지한 뒤 일어난 마음의 벅찬 감응 탓이다. 꽃철은 저 멀리 있다. 이 아침에 나는 꽃이 지는 아침에 울고 싶은 마음이 되는 '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 헤아려본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조지훈,'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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